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업체인 코스닥 상장사 디엠에스(DMS(068790))의 한국 법인과 중국 자회사에서 핵심 기술과 인력을 무단으로 빼돌려 동종 기업을 차린 뒤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린 업체 대표와 직원이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양형위원회가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양형 범위를 대폭 상향하면서 법원의 ‘엄벌 기조’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은 이달 4일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및 부정 경쟁 방지 및 영업 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 누설 등)으로 기소된 반도체소자 회사의 공동대표인 피고인 A·B 씨와 직원 C 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검사 측과 피고인 측 모두 항소를 제기해 이달 18일 상급법원으로 사건이 송부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정상참작 사유가 없다고 보고 이례적으로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선고했다. 회사 공동대표인 A·B 씨에게 각각 징역 4년과 3년 6월을, 직원 C 씨에게는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내렸다. B 씨는 재판 중 음주운전 범행을 저지른 것도 이번 양형에 반영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피해 회사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 축적한 영업비밀을 부정 사용한 범행으로서 그 비난 가능성이 큰 점, 국가적으로 보호가치가 큰 산업기술(첨단기술)의 실효적 보호를 위해서는 그 부정 사용 행위를 엄히 벌할 필요가 있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DMS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공모해 부정하게 산업기술을 탈취했다고 판단했다. 피고인들은 과거 DMS의 임직원으로 재직해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른 비밀 유지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어겼다. 또 DMS의 주력 제품인 세정 장비의 사양도와 주요 부품의 설계 도면 등 기술 자료를 부정하게 사용했다.
산업기술보호법은 ‘대상 기관의 임직원 또는 대상 기관과의 계약 등에 따라 산업기술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대상 기관에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유출하거나 그 유출한 산업기술을 사용 또는 공개하거나 제3자가 사용하게 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이 유출한 기술은 디스플레이 분야의 습식 식각, 세정 장비 관련 기술로 이는 산업보호기술법이 보호하는 ‘첨단기술 및 제품’ 범위에 포함돼 있다.
A 씨는 2004~2015년까지 약 11년간 DMS 중국 법인의 세정 장비 설계 및 개발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개발관리팀 부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2015년 퇴사와 동시에 동종 업체를 설립했다. 공동 대표인 B 씨 역시 DMS에서 8년간 기술팀 차장 등으로 근무했다. C 씨는 DMS의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이들이 차린 업체에 직원으로도 입사했다.
이들은 회사 설립 이후 자본과 인력이 부족해 자체적인 기술 개발이 불가능해지자 DMS의 기술과 자료, 심지어 임직원까지 채용해 영업비밀을 부정하게 취득했다. 이 과정에서 DMS의 국내 법인뿐만 아니라 중국 법인이 보유한 기술이 모두 유출됐다. 이들은 중국 현지 법인까지 설립해 DMS 로고만 삭제하거나 일부 변경하는 방식으로 디스플레이 생산 공정 장비를 생산했으며 빼돌린 기술로 제작한 장비를 DMS의 경쟁 업체를 상대로 영업한 혐의도 있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한 만큼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식재산·기술 침해 범죄에 대한 형량의 범위를 상향하면서 초범이거나 형사처벌 전력이 없더라도 집행유예 선고 시 주요 참작 사유에서 제외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가 핵심 기술을 국외 유출하면 최대 18년형을 선고할 수 있으며 일반 산업기술을 국내에 유출하더라도 기존 6년에서 최대 9년까지 무겁게 처벌할 수 있다. 올 7월 1일 공소 제기된 사건부터 적용된다.
한편 재판부는 이들의 혐의 중 일부 ‘단가 정보’ 유출 등은 영업비밀에는 해당하지만 산업기술보호법상 기술에 해당하지 않아 무죄로 봤다. 다만 이와 상상적 경합(하나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동시에 해당하는 것) 관계에 있는 영업비밀 누설죄를 유죄로 판단해 따로 무죄는 선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