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시장의 지배자는 더 이상 대형은행들이 아니라 대형펀드와 이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거대 자산운용사들이 금융위기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은행들을 제치고 미국 경제 자금줄을 장악하고 있다고 21일 보도했다.

지난 2008년 당시 미국 은행들과 자산운용사들의 운용자산은 엇비슷했다. 각 분야 모두 120억 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산운용사와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 각종 펀드에 들어있는 자금이 약 43조5천억 달러로 은행 자산 23조 달러보다 두 배나 많다.

일부 대형 펀드의 경우 자산규모가 어지간한 국가의 경제 규모와 맞먹는다.

빅 4로 분류되는 블랙록, 피델리티, 스테이트 스트리트, 뱅가드의 자산을 합치면 약 26조 달러로, 미국의 연간 경제 생산액 전체 수준이다.

스테이트 스트리트의 자산규모는 4조1천300억 달러로 독일의 4조800억 달러보다 크다.

프랭클린 템플턴의 자산(1조3천700억 달러)은 인도네시아(1조3천200억 달러)보다 많으며 블랙스톤 자산규모(1조400만 달러)도 네덜란드(1조100만 달러)보다 크다.

자산운용사들의 성장은 금융위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위기를 수습하면서 정부 당국은 은행들에 새로운 규제를 가했고 이로 인해 은행들의 투자와 대출이 축소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게 유지해 고수익을 바라는 투자자들이 은행 예금이나 국채 투자를 외면하게 했다,

민간 자산운용사들은 이 와중에 고수익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펀드를 계속 만들면서 고객을 끌어모았다.

공공기금을 관리하는 자산운용사들도 주로 주가지수를 추적하는 낮은 수수료의 펀드나 뮤추얼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내놓아 저변을 확대했다.

자산운용사들이 성장하자 기존 은행들의 업무영역도 자산운용사들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월가에서 누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경계선은 모호해졌다.

대형 은행들은 투자팀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골드만 삭스의 경우 1분기에 자산관리 부문에서 약 4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는데, 이는 투자은행 부문 수익의 두 배에 달한다.

자산운용사 경영진은 이런 성장세가 두드러지긴 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라고 평가한다.

펀드매니저들에 대한 자문을 주로 하는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의 타일러 클로허티 상무는 “자산관리 사업이 금융 서비스의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감에 따라 금융회사들의 업무영역이 모호해졌다”면서 “요즘 주로 받는 질문이 ‘소매 고객 외에 어디를 사업 대상으로 삼아야 하느냐?’이다.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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