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분열이 일상 삶까지 침투하며 국가 역량 약화시켜
“한국전쟁 이후 반공주의 시대보다 더 첨예한 대립 상황”
대한민국이 ‘심리적 내전’ 상태에 빠져있다. 윤석열 대통령 파면으로 계엄 이후 4개월간 지속된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정치 진영 간 갈등은 오히려 극심해졌다. 서로를 “반국가세력”, “내란동조세력”이라 낙인찍고, “빨갱이”, “수구꼴통” 같은 멸칭으로 공격하며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전쟁 이후 반공주의가 극렬했던 시기보다 지금이 더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경쟁은 자연스럽지만,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보면 공존이 아닌 공멸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세대·남녀·지역으로 번지는 갈등의 불길
정치적 갈등은 이제 세대, 성별, 지역 간 갈등으로 확산됐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18~50대는 대체로 탄핵에 찬성하는 반면, 60대는 찬반이 팽팽하고 70대 이상은 반대 의견이 우세했다.
가정에서는 정치 유튜브를 시청하는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일상화됐고, 가족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일이 빈번해졌다. 20·30대 남성의 보수화 현상도 두드러지며, 정치 성향 차이로 젊은 남녀 간 연애와 결혼에도 장벽이 생겼다. 영·호남 지역감정과 탄핵 찬반을 동일시하는 현상도 되풀이됐다.
민주주의 근간 흔들리는 위기적 상황
이런 적대적 관계가 고착화하는 사이, 법원, 헌재, 언론 등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 기관에 대한 신뢰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윤 대통령 구속 직후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와 구속 취소 후 서울중앙지법 판사에 대한 협박이 이어졌으며, 헌법재판관에 대한 위협도 계속되고 있다.
정치 유튜브가 기성 언론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정제된 사실보다 ‘입맛’에 맞는 정보만 소비하는 확증 편향 현상이 강화됐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치러질 조기 대선은 탄핵심판 못지않게 격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국민통합의 길을 찾아야 할 시점
국민 통합의 메시지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향후 대선 과정에서 정치인들이 확증 편향에 의한 국민 편 가르기를 또 주장할 것”이라며 “헌법적 가치를 중심으로 국민 통합을 하고, 정치인들은 정치 보복을 더이상 이어가지 말자고 선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우로 극심하게 갈라진 한국 사회의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외유내환 속에서 아직도 대통령 탄핵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가 역량을 결집해 미래를 준비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내부 분열로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우려를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