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외부의 돌발변수가 아니다. 그는 미국의 중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금 집무실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꺼낸 정책은 과거와 다르지 않았다. 무역장벽, 보호무역, 관세 강화. 익숙한 구호, 익숙한 방식이다.
그리고 이제 많은 이들이 외친다. “대통령이 제멋대로 한다.” “경제를 망치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다.”
하지만 우리는 이 외침을 거울 앞에서 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고?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적인 절차로 선출된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지 않았다. 투표로, 공식 절차를 따라, 수백만 명의 미국 국민들이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더구나 그는 무엇을 하겠다고 했는지 감추지 않았다. 관세를 부과하겠다 했고, 무역 재편을 선언했으며, 미국 우선주의를 다시 내걸었다.
그리고 우리는 박수쳤다.
그러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정책과 혼란은 단순한 ‘트럼프의 일탈’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결과이며, 더 깊이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자초한 위기다.
절차는 지켰으나, 정신은 실종되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민주주의의 신화를 믿어왔다. 투표가 이뤄지면, 모든 것이 정당하다고. 절차를 거쳤다면, 결과도 옳다고.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믿음의 파편 속에 서 있다.
관세는 세금이다. 그리고 헌법은 세금을 결정할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은 사실상 독단으로 무역 질서를 흔든다. 의회의 견제는 무력하다. 이쯤 되면 물어야 한다.
이건 정말로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라는 껍질을 뒤집어쓴 새로운 독재인가?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민주주의의 파라독스’다.
제도는 살아있지만, 정신은 희미해졌고, 절차는 지켜졌지만 결과는 의심스럽다. 투표는 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
지도자보다 위험한 것은 지도자를 만든 시스템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더 무서운 건, 그가 그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시스템의 허술함이며,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유권자의 선택이다.
독재는 총칼로만 오지 않는다. 때로는 투표함을 통해 온다. 그것도 기꺼운 박수와 함께.
진정한 위협은 대통령이 아니라, 견제 없는 대통령제를 수용한 대중의 순응과 착각일지도 모른다.
다시 묻는다
“민주주의가 작동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민주주의를 해친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그 답은 아마, 투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한 번의 선거가 아니라, 끊임없는 감시, 참여, 질문으로 유지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미국은 다시 거울 앞에 서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선택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