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상보다 높은 상호관세 책정…제조업 분야 타격 불가피
비관세 장벽 협상 과제지만 탄핵 정국에 협상력↓…경기부진에 악재 겹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예상보다 높은 수준(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대미 수출에 켜진 비상등은 대미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는 악재다.
당장 미국 측이 부각한 비관세 장벽 해소를 위한 협상이 과제로 남았지만 탄핵 정국에 따른 리더십 부재로 협상력이 약한 상태다.
고율 관세 압박을 못 이긴 국내 제조업의 생산 기지 이전이 중장기적으로 본격화하면 고용·소비 등 연쇄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내외 악재가 산적했지만 경기 부진, 감세 정책에 추경 논의 지연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재정 실탄이 부족한 점은 특히 아쉬운 대목이다.
◇ 불안한 금융시장…정부 “당분간 높은 변동성 지속”
3일 관계 당국 등에 따르면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상호관세가 현실화하면서 관가와 시장에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산 수입품에 물리는 25%의 관세를 포함, 모든 국가에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상호관세로 FTA의 무관세 효과가 모두 사라진다는 점에서 대미 수출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른 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런 우려를 반영해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장 대비 68.43포인트(2.73%) 떨어진 2,437.43으로 출발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도 전장보다 4.4원 오른 1,471.0원으로 출발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전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소집해 과도한 변동성에 우려를 표했다.
최 부총리는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조치로 당분간 글로벌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이 지속될 것”이라며 “시장 변동성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모든 시장안정 조치를 즉각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FTA 무관세 효과 사라진다…”미국 내 생산자와의 관계 중요”
한국에 부과된 상호관세율은 중국(34%), 베트남(46%), 대만(32%), 일본(24%), 인도(26%)와 비교하면 비슷하거나 다소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해볼 만하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한국은 무관세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상대적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내 생산자들과 비교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도 악재로 꼽힌다.
미국 관세 압박에 못이긴 생산자들이 미국 내 생산기지로 이전을 늘리면 국내 제조업 생산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달 미국 조지아주에서 신규 공장 가동을 본격화했고 SK온도 생산 라인 일부를 현대차그룹 전용 라인으로 전용하는 등 이미 시장의 변화가 감지되는 상황이다.
신원규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앞으로 미국 내 생산자들과의 경쟁 관계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라며 “그래서 이 25%가 낮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발표한 국가별 상호관세는 앞으로 진행될 국가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다.
당장 발표된 상호관세율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제한 등 미국 측이 부각한 비관세 장벽 협상에 주력해야 한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국회의 무더기 탄핵소추 등으로 협상을 지휘할 국가 리더십은 사실상 부재 상태다.
윤 대통령이 오는 4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판결 선고로 파면이 되거나 복귀하더라도 당분간은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한국 성장률 전망 줄하향 와중에 또 악재
이번 미국발 관세 폭탄은 한국 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 터졌다는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
소매판매는 역대 최장 부진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고 건설업 역시 유례없는 불황을 거듭하며 고용시장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해외 기관의 한국 성장률 전망 줄하향 흐름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최근 미국발 관세 충격 등을 먼저 반영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2%에서 0.9%로 낮췄다.
영국의 리서치 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E)도 지난달 26일 보고서에서 전망치를 1.0%에서 0.9%로 하향 조정했다.
바클리가 1.6%에서 1.4%, HSBC가 1.7%에서 1.4%,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2.0%에서 1.2%로 전망치를 내리던 가운데 0%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통상 재정이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지만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곳간 사정도 녹록지 않다. 2년째 계속된 역대급 세수 펑크, 고소득·대기업 위주의 자산과세 감세 등으로 법에서 정한 의무지출까지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대선을 앞두고 복잡해지는 정치권 이해관계도 재정 역할을 제약하고 있다.
정부는 산불 피해 대응을 위해 최근 10조 필수 추경을 공식화했지만 예비비 증액, 지역화폐 등 이견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이제 국가별로 협상을 해나가야 하는 협상의 시간”이라며 “지금 대통령 부재 상황이기에 일단 유럽과 중국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