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백신 최고 담당자가 강제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백신 음모론’을 주장해 온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갈등 때문이다.
2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FDA에서 백신 개발에 핵심 역할을 해온 피터 마크스 박사가 28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WSJ는 FDA 내부 관계자들을 인용, “보건복지부에서 마크스 박사에게 스스로 사임하거나 해고되는 것을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진 사임이 아닌 강제 사임이라는 뜻이다.
보건복지부가 마크스 박사를 물러나게 한 이유는 장관과의 ‘코드’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케네디 장관은 20년간 백신 회의론을 주장해왔다. 취임 전부터 백신이 감염병을 막기보다는 새로운 질환을 일으키는 ‘해악’이라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최근에는 정부의 백신 접종 방침을 변경하려고 시도했으며, 코로나19 백신을 위한 4억6,000만 달러(약 6,800억 원) 규모 계약을 취소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6일 워싱턴 백악관 내각회의에 참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특히 그는 지난달 10년 만에 처음으로 백신을 맞지 않은 어린이가 홍역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홍역은 매해 유행했고, 백신 접종은 개인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발언해 의료계의 비판을 받았다. 홍역은 전염성이 코로나19보다 높지만 백신 접종만으로도 손쉽게 예방이 가능한 질병으로 평가된다.
마크스 박사는 이날 FDA 국장 대행에게 보낸 사임서에서 “케네디 장관은 진실과 투명성을 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허위 정보와 거짓말에 복종하길 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서 케네디 장관에게 보낸 메모에서는 “내 희망은 우리나라 공중 보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앞으로 몇 년간 지속될 과학적 진실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 끝나길 바란다는 것”이라고 읍소하기도 했다.
WSJ는 “앞서 케네디 장관은 인준을 위한 청문회 과정에서 ‘백신 승인이나 안전성 모니터링을 위한 시스템을 바꾸지 않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면서 “그것이 바로 마크스 박사가 담당하던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