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없었다’ 해명에 더 분노…정보 제공한 이스라엘, 비공식 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안보 수뇌부가 민간 메신저에서 군사작전을 논의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불거진 ‘시그널 게이트’의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작전의 성패와 군인의 목숨이 달린 민감한 정보가 함부로 다뤄진 것을 두고 미군 조종사들이 반발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동맹국에서도 비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후 미 공군과 해군 조종사들 사이에서 당혹감과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작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다수의 인사들이 참여한 채팅방에서 출격 시간이나 출격 기지, 기종 등을 말한 것은 수십년간 지켜 온 군의 작전 교리를 뒤흔드는 일이라는 것이 조종사들의 시각이다.
중동 지역에서 여러 차례 출격한 경험이 있는 해군 F/A-18 전투기 조종사는 “우리는 의도적으로 불필요한 사람들에게 작전 계획을 말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전·현직 전투기 조종사들도 “언제 적의 목표물 상공에 진입할 것인지 알려져서는 안 된다”며 “전우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라고 입을 모아 비판했다.
전직 공군 조종사인 앤서니 버크 소령은 “작전 계획을 공개하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며 “군에서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해군 조종사 출신 파커 컬도 중령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할 국방부 장관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화가 난다”고 했다.
민간 메신저 채팅 사실이 공개된 이후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전쟁 계획’을 공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것에 조종사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작은 정보 유출의 가능성도 막기 위해 대기실에서 작전 지시 문서를 불태울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쓰는 이들의 입장에서 그저 ‘기밀인지 아닌지’ 옥신각신하며 사안을 축소하는 데 급급한 국방부를 신뢰하기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전직 해군 대령 조지프 커펄보는 “항공모함 위에서는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작전 보안이 스며들어 있다”며 “누가 언제 무엇을 들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해군 F/A-18 편대 지휘관 출신 조종사는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조종사들이라면 메신저에서 공유된 내용을 기밀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며 헤그세스 장관이 “극도로 무신경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만약 헤그세스 장관이 공유한 출격 시간이나 기지 등 정보가 새어나가 후티 반군에 흘러들어갔다면 작전이 실패하고 조종사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군사 분석가 페이비언 힌츠는 “후티 반군은 이란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지대공 미사일을 제공받았다”며 “전투기와 높은 고도의 목표물을 모두 공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 후티 반군의 방공망은 전투기보다 속도가 느린 미군 드론을 여러 차례 격추시켰다고 한다.
미군과 정보를 공유하는 동맹국에서도 이번 사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 당국자들이 메신저 대화가 공개된 것에 대해 미 당국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마이크 왈츠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채팅에서 언급한 후티 반군의 미사일 분야 최고 책임자의 소재 추적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밀이 논의되지 않았다’는 당사자들의 해명과 어긋나는 정황 중 하나라고 WSJ은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정보 유출로 인해 다른 나라들이 민감한 정보 공유를 꺼리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