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6년전 보류했던 칼 뽑아…한국도 비상, 현지생산 확대로 충격완화 시도할듯
4·2 상호관세 발표가 ‘정점’…물가 등 美 경제 타격 시 유연성 가능성도
한미FTA 협상했던 커틀러 “韓 등 무역파트너들에 파괴적 영향 있을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외국산 자동차 및 주요 부품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면서 ‘트럼프발 관세전쟁’은 한층 가열하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외국산 자동차와 핵심 부품에 대한 25% 관세를 4월 3일부터 부과한다고 발표하고,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 12일부터 철강과 알루미늄 분야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무역에 큰 영향을 줄 또 하나의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는 것이다.
4월 2일 각국의 대미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을 두루 감안해 설정하는 상호관세가 발표될 예정이라는 점에서 트럼프가 시작한 관세전쟁은 정점을 향하게 됐다.
자동차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인 2019년 빼 들었다가 결국 쓰지 않고 칼집에 도로 넣은 ‘칼’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자동차 수입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라고 상무부에 지시했고, 과도하게 많은 외국산 자동차가 미국 국내 산업기반을 약화하고 국가안보를 해친다는 보고를 받았다.
미국 방위산업이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의지하는 바가 큰 상황에서 외국차 수입이 늘고 미국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면 군용 차량 제조에 쓰일 역량을 개발하고 첨단 제품을 개발할 미국 자동차 업체들의 신규 투자가 잠식된다는 결론이었다.
당시 상무부 보고서는 각국과의 협상, 수입차 및 특정 자동차 부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 등의 대책을 제안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자동차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았다.
결국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이 6년 만에 ‘칼집 속의 칼’을 빼내 휘두른 모양새가 됐다.
백악관은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미국의 자동차 제조 기반 재건이 이번 관세의 핵심 목표의 하나임을 분명히 했다.
백악관은 “1985년에는 미국인이 소유한 미국 내 시설에서 제조한 차량이 1천100만대로, 전체 국내 생산 차량의 97%를 차지했다”면서 “작년 미국인들은 승용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경트럭 약 1천600만 대를 샀는데, 그 중 절반인 800만대가 수입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백악관은 이번 관세가 “미국의 자동차 분야를 보호하고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최대 시장이어서 한국이 받을 영향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전기차를 포함한 한국산 승용차에 대해 2016년부터 무관세를 적용해온 가운데, 지난해 한국의 전체 자동차 수출액(707억8천900만달러)에서 대미(對美) 수출액은 약 49%(347억4천400만달러)에 달했다.
자동차는 한국의 대미 수출 1위 품목이며, 한국은 2023년 기준으로 멕시코, 일본, 캐나다에 이어 대미 자동차 수출국 4위에 위치했다.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와 4월2일 발표될 국가별 상호관세까지 더해지면 한국 자동차 메이커의 미국 시장 가격 경쟁력은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에 비해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일단 트럼프 행정부의 외국산 자동차 25% 관세는 미국에 수출하는 다른 나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기에 상호관세에서 한국이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에 비해 더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을지,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을지가 가격 경쟁력 유지에 있어 중요한 변수로 부상했다.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 물량의 다수를 차지하는 현대차그룹은 트럼프발 관세 폭풍을 미국 현지 생산 확대로 돌파한다는 복안을 세운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4일 백악관에서 이뤄진 정의선 회장의 발표를 통해 4년간 미국에 210억 달러(약 31조원)의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작년 기준 연간 70만대에 달한 미국내 생산 역량을 향후 120만대까지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현대차그룹은 26일 공식 준공식을 가진 조지아주 서배너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 규모를 당초 구상한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늘리기로 했고, 루이지애나주에 차량용 철강을 생산할 제철소도 짓기로 했다.
대미 판매 자동차 가운데 관세 적용을 받지 않는 미국 내 생산 물량을 늘림으로써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다만 한국 내 생산 기반이 미국 현지 생산량 확대분만큼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육책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월2일 상호관세까지 발표되면 전 세계 각국의 대응도 바빠질 전망이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는 ‘맞불 관세’를 불사하겠다는 기조이며, 중국은 미국에 대한 ‘맞불’ 관세를 부과하는 동시에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시작했다.
한국은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는 한미 FTA를 대체할 새로운 합의를 만들거나, FTA 재협상에 나서게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상호관세와 관련해 ‘유연성’의 여지를 두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정부는 상호관세 발표 이전에 대미 협상에 고삐를 당길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부의 잇단 관세 부과가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공약해온 ‘감세’를 앞으로 시행할 때, 줄어들 세수를 관세로 메운다는 기조하에 재계의 우려를 사실상 무시하며 관세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관세가 물가를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작지 않다.
앞서 연준은 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했다”며 연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 예상치를 2.7%(종전 2.5%)로, ‘근원 PCE 물가 상승률'(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 품목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 예상치를 2.8%(종전 2.5%)로 각각 올렸다.
연준은 또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이하 중간값)를 작년 12월의 2.1%에서 1.7%로 하향 조정했다.
이와 같은 예측이 현실화함으로써 관세가 경제에 미칠 역효과가 가시화할 경우 실제 관세 집행에 속도를 조절하면서, 관세를 무기로 각국과의 관계에서 더 나은 교역 조건을 얻으려 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관세에 대한 미국 내부의 평가는 엇갈렸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논평을 통해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일본, 한국, 멕시코, 캐나다, 유럽 등 우리의 가까운 무역파트너 국가 다수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 FTA 협상 때 미측 수석대표를 지냈던 커틀러 부회장은 이어 미국이 한국·멕시코·캐나다 등과 FTA를 체결하고 있음을 거론한 뒤 “무역협정 하에서 미국의 약속이 갖는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대선에서 미시간 등 북부 경합주 표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미자동차노조(UAW)의 숀 페인 위원장은 “기업들의 무자비한 탐욕보다는, 이 나라를 만든 노동자들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돌아간다는 신호”라며 환영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