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기억 못 하는 이유는 기억 형성보다 인출 실패 때문”
사람들은 보통 생후 3년 안에 겪은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기 기억상실'(Infantile Amnesia) 증상을 보이는데 이는 기억 형성 과정 문제보다는 기억 인출 실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예일대 니컬러스 터크-브라운 교수팀은 21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서 생후 4~25개월 된 영아들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스캔하면서 기억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실험에서 생후 12개월부터 개별적 경험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람들은 생애 첫 몇 년 동안 많은 것을 배우지만 성인이 돼서는 당시의 구체적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 ‘유아기 기억상실’로 알려진 이 현상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일화 기억'(episodic memory)을 형성하고 오랫동안 기억을 저장하는 데 중요한 뇌 부위인 해마(hippocampus)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기억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최근 설치류 연구에서는 해마에서 기억 흔적(engram)이 형성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접근할 수 없게 된다는 결과가 나와 기존 가설에 도전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생후 4~25개월 된 영아 26명을 대상으로 해마가 개별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fMRI를 이용해 뇌를 스캔하면서 기억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에서 연구팀은 얼굴, 풍경, 사물 등 사진을 아기들에게 보여준 다음 나중에 다시 사진을 보여줄 때 뇌 스캔을 하는 동시에 시선 반응을 추적해 특정 사진에 대한 기억 여부를 조사했다.
터크-브라운 교수는 “아기가 특정 사진을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으면 다시 볼 때 더 많이 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며 “이 기억 과제에서 아기가 옆에 있는 새로운 사진보다 이전에 본 사진을 더 많이 쳐다본다면 아기가 그 사진을 기억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험 결과 아기들의 해마는 생후 12개월께부터 개별적인 경험의 기억을 부호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실험 결과는 영아기 기억이 비록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아기들의 뇌에는 이 시기에 이미 일화 기억을 형성하는 메커니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연구는 유아 기억상실은 기억 형성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형성된 기억을 인출하는 과정의 실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터크 브라운 교수는 유아기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기억이 장기 저장소로 변환되지 않아 오래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과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접근할 수 없는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며 후자일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