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연구실 방 빼”… ‘트럼프 광풍’에 짐싸는 유학생들

미국 대학교. 기사내용과 관련없음[로이터]

▶ 트럼프 2기 정책에 한인 학생들 직격탄
▶ 반이민·DEI 폐기·연구비 삭감 등 ‘3중고’

▶ 트럼프 등쌀에 기업들 외국인 채용 꺼려
▶ 높은 취업문·고환율 생활고… 귀국 러시

UC 버클리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인 유학생 김모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가뜩이나 환율이 올라가 가족과 함께 미국 생활을 이어가기가 빠듯한데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이른바 DEI 정책 위반 혐의로 현재 다니고 있는 UC 버클리가 조사 대상에 올랐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는 “만약 지금 있는 연구실이 축소되거나 없어지면 유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강화된 반이민 정책에다 DEI 폐지 압박이 높아지는 등 ‘트럼프발 광풍’이 몰아치면서 미국내 외국인 유학생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어 김씨처럼 불안감을 느끼는 한인 유학생들이 늘고 있다. 외국인 유학생 대상 각종 장학금·채용 지원 제도가 줄줄이 올스톱되고 있으며, 여기에 외국인 혐오 정서 악화, 환율 악화에 따른 생활비 부담까지 겹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이어 또 다시 한인 유학생들의 미국 탈출 러시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원금 끊긴 석·박사들 ‘패닉’

한인 유학생 커뮤니티와 유학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정책의 영향으로 박사과정 등 대학원 유학에 필수적인 연구비·생활비 지원이 대폭 줄어든 것은 물론, 미국내 빅테크 기업들에서 일하려는 석·박사학위 취득 유학생들에 대한 취업 문턱까지 높아지면서 한인 유학생들의 설 자리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뉴저지주의 한 주립대학교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박사과정 1년차 안모씨는 며칠 전 돌연 채용 취소를 통보받고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정식 업무에 앞서 연구실에 이미 9주간 출근까지 한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모든 펀딩 절차가 동결(freezing)돼 인력을 받을 수 없다’는 통지가 왔기 때문이다. 그는 “유학생들은 대부분 정부의 연구 지원금 등 펀딩에 의존하는데 그 경로가 아예 막혀서 월급을 줄 수 없다는 것”이라며 “다른 연구실 지원을 알아보는 중이나 최악의 경우 귀국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워싱턴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28)씨도 “미국내 취업이 어려워졌음을 크게 체감한다”면서 “주변 박사 지인들 중에 연구비가 잘리거나 6년짜리 풀펀딩 대신 3~4년밖에 펀딩을 못 받아서 한국으로 돌아간 경우가 여럿”이라고 전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석사과정 유학생 이모(27)씨도 지난해 9월부터 구직 중이지만 서류부터 탈락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문

이씨는 자신이 자꾸 떨어지는 이유로 취업비자 스폰서십이 필요한 외국인 유학생 신분을 지목했다. 그는 “이력서를 제출할 때마다 꼭 ‘비자 스폰서십이 필요하냐’고 묻는데 그렇다고 하면 감점이 되는 듯하다”며 “한 번은 필요하다고 체크하자마자 곧바로 ‘최소 기준 충족이 안 된다’며 탈락했다”고 전했다.

빅테크 기업들의 분위기도 급변했다. 이 씨는 “정치적으로 불확실하다 보니 실리콘 밸리마저 비자 지원 규모를 줄이는 것 같다”며 초조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유학생이 졸업 후 취업하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허가증(EAD) 카드 발급 절차도 늦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3가지 배경

미국내 유학생들의 입지를 흔들고 있는 제도적 변화는 크게 세 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 폐지다. DEI 폐지에 실리콘 밸리 빅테크들까지 호응하며 유학생들의 입지 문제가 커지고 있다.

국립보건원(NIH), 국립과학재단(NSF)을 필두로 한 주요 연구기관들의 예산 삭감, 급변하는 이민·비자 관련 정책도 유학생들을 난감하게 만든다. 예술·과학계를 중심으로 각종 연구 사업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뚝 끊긴 것은 물론 연쇄적으로 민간 기업의 소수자(외국인·여성 등) 대상 장학금 및 채용 지원 제도가 쪼그라들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혐오 정서가 확산하며 느끼는 심리적 압박, 치솟은 환율 부담으로 유학생들의 ‘미국 탈출’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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