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감옥에 수백명 추방…트럼프 ‘법원 패싱’ 논란

U.S. President Donald Trump reacts as he meets NATO Secretary General Mark Rutte (not pictured), in the Oval Office at the White House in Washington, D.C., U.S., March 13, 2025. REUTERS/Evelyn Hockstein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지난 15일 외국인 수백명을 비행기 3대에 태워 강제추방한 조치가 법원 명령을 고의로 거부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법원은 강제추방 일시중단을 결정하면서 필요하다면 비행기가 미국으로 귀환토록 하라고까지 명령했으나, 트럼프 정부가 법원 명령을 의도적으로 거부했다는 것이다.

16일 주요 언론매체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범죄조직 ‘트렌 데 아라과'(Tren de Aragua·TdA)의 조직원 중 미국 내에 있고 미국 시민이 아닌 14세 이상 베네수엘라 국적자를 검거·구금·추방토록 국토안보부 등에 지시하는 포고령에 서명했다.

그는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AEA)을 이 추방령의 근거로 들었다.

이 법은 1798년 제정된 이래 227년간 대규모 전쟁 시기에 단 3차례만 발동된 전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포고령에 서명한 시점은 금요일인 14일이었으나, 서명 사실을 한동안 비공개로 하고 있었다.

이 포고령의 존재가 외부로 알려지게 된 정확한 경위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는 베네수엘라 국적자들이 추방 통보를 받는 과정에서 이들의 변호를 담당해 온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소속 변호사들이 포고령의 존재를 파악하게 됐을 공산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ACLU 소속 변호사들은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던 베네수엘라 국적자 5명을 대리해 트럼프 대통령의 추방령이 불법이라며 이를 중단시켜 달라는 취지의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자 백악관은 비밀 포고령 서명 다음날인 15일 오후 4시 20분에 백악관 홈페이지에 이를 공개했다.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는 ACLU 측이 신청을 제출하자 이날 오후에 급히 화상회의로 심리를 열었다.

심리는 오후 5시부터 20분간 진행된 후 40분간 휴정을 거쳐 오후 6시에 재개됐고, 보스버그 판사는 오후 6시 47분에 추방령 일시정지 결정을 구두로 선고했다.

그는 결정을 선고하면서 추방 대상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이미 비행 중이라면 미국으로 되돌아오도록 하라고 정부에 명령했다.

이어 오후 7시 26분에는 전자소송기록시스템에 보스버그 판사의 명령을 담은 결정문이 올라왔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15일에 텍사스발 엘살바도르행 항공편에 태워져 추방된 외국인은 모두 261명이었으며, 항공편은 총 3편이었다.

이 중 1편은 보스버그 판사의 결정문이 전자소송기록시스템에 올라온 후인 오후 7시 36분에 텍사스에서 출발했다.

나머지 2편은 보스버그 판사가 결정을 선고하기 전에 텍사스에서 이륙했다.

다만 3편 모두 16일 이른 오전 엘살바도르에 도착하기 전에 온두라스에 있는 경유지에 들렀으며, 그 시점은 모두 결정문이 시스템에 올라온 후였다.

즉 비행기를 미국으로 되돌아오도록 하라는 보스버그 판사의 결정이 통지된 후였는데도 트럼프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WP에 “(보스버그 판사의) 이 결정은 항공편이 언제 이륙했든 상관없이 근거가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일개 도시의 일개 판사가 항공기의 움직임을 지시할 수는 없다”면서 대통령의 외무 업무에 관해 연방법원은 일반적으로 관할권을 갖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추방 대상자들이 이미 미국 영토를 벗어난 시점에 법원 명령이 내려졌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이 법원 결정을 노골적으로 조롱한 점도 법원 명령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수갑을 찬 남성들이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비행기에서 내린 후 감옥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교도관들이 이들의 머리카락을 미는 모습을 담은 3분 분량의 영상을 16일(현지시간) 소셜 미디어로 공개했다.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또 보스버그 판사의 명령 내용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면서 “에구… 너무 늦었네”라며 조롱하는 글을 적었으며,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 백악관 스티븐 청 백악관 공보국장 등이 부켈레 대통령의 게시물을 공유하면서 조롱에 가세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것들은 비뚤어진 조 바이든과 급진 좌파 민주당에 의해 우리나라로 보내진 괴물들”이라며 소셜미디어에 관련 영상을 공유하면서 부켈레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조지타운대 법대의 데이비드 수퍼 교수는 NYT에 “이것은 분명히 법원을 모독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행기를 돌리려고 한다면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부켈레 대통령이 이끄는 엘살바도르 정부에 600만 달러(87억원 상당)를 지불하고 중남미에서 활동하는 국제범죄조직 ‘트렌 데 아라과'(TdA) 조직원 300여 명을 1년간 수감토록 하는 계약을 맺었다.

한편 WP에 따르면 16일 추방된 261명 중 TdA 조직원으로 의심돼 AEA에 따른 포고령이 적용된 베네수엘라 국적자는 137명뿐이었고, 다른 추방 대상자들에게는 그 밖의 법령이 적용됐다.

TdA가 적용되지 않은 베네수엘라 국적자가 101명, 또다른 범죄조직 MS-13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엘살바도르 국적자가 23명이었다.

다만 ACLU가 대리해 소장을 제출한 베네수엘라 국적자인 원고 5명은 추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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