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68번·계엄 배경 강조…위법 의혹엔 “호수 위 달그림자”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출석… ‘손 번쩍’ 직접 발언 기회 요청
현직 대통령 최초로 탄핵심판에 직접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총 11회의 변론 중 8번 참석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2일(한국시간) 법조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최후 진술을 포함해 모두 150여분 동안 4만자가 넘는 발언을 통해 12·3 비상계엄 선포는 정치적 선택이며 위헌·위법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마지막 변론에서 67분간 이어진 최후 의견 진술 외에도 주요 증인신문이 끝난 뒤에는 대부분 직접 의견을 밝혔다.
처음 출석한 1월 21일 3차 변론부터 최후 진술이 이뤄진 지난 달 25일 11차 변론까지 심판정에서 한 발언들을 돌아봤다.
◇ “계엄 형식 빌린 대국민 호소”…심판정서도 야당 비판
윤 대통령의 발언은 형식적으로 헌법재판관들을 향해 이뤄졌지만, 사실상 지지층을 겨냥한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전체 발언에서 ‘민주당'(더불어민주당)·’야당’을 최소 68번 언급하며 계엄 선포를 결심한 계기에 야당의 ‘줄 탄핵’과 이른바 ‘입법 폭주’가 있었다고 내세웠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 출석한 1월 23일 4차 변론에서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의 이유는 야당에 대한 경고가 아니고 주권자인 국민에게 호소해서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면서 “야당에 대한 경고가 먹힐 거면 이런 비상계엄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거대 야당의 ‘폭주’에 제동을 걸 방법이 없어 불가피하게 계엄을 선포했다는 취지다.
야당에 대한 공세는 재판부가 시간제한 없이 발언을 허용한 2월 25일 11차 변론 최후 진술에서는 더 거셌다.
윤 대통령은 1시간 넘게 이어진 진술에서 ‘야당’을 48번 언급하며 “줄탄핵, 입법 폭주, 예산 폭거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켜왔다”고 주장했다.
‘부정선거론’과 북한의 간첩 등 안보 위협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직접 출석한 첫 재판인 1월 21일 3차 변론부터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드는 것이 많이 있었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꺼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주장을 펼쳤다.
최후 진술에서는 ‘간첩’을 스무 번 넘게 언급하며 안보 위기를 강조했다. “서서히 끓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눈앞의 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벼랑 끝으로 가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이 보였다”고도 말했다.
◇ 위법 의혹엔 “호수 위 달그림자”…일부 책임 돌려
윤 대통령은 계엄 과정에서 국회의원을 국회에서 끌어내라거나 정치인 등을 체포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국회 측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것”을 쫓듯 실체 없는 의혹을 제기한다고 비판했으며, “예상보다 빨리 끝난 계엄”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포고령 1호 등 일부 위법 소지가 있는 내용은 김용현 전 장관이나 군 지휘관 등에 일부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4차 변론에서 김 전 장관에게 “(장관이) 써오신 계엄 포고령을 보고 당시 내가 ‘법적으로 손댈 건 많지만 계엄이 하루 이상 유지되기도 어렵고 하니 그냥 놔두자’고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또 이번 계엄이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계획했으나, 그 사실을 다른 군 지휘관 등에겐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이 “저나 장관이 생각한 것 이상의 어떤 조치를 준비를 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2월 20일 10차 변론에서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조지호 경찰청장에 주요 인사의 위치 확인을 요청한 것과 관련해선 여 사령관이 “수사에 대한 개념 체계가 없다 보니” 한 일이라면서 “불필요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 손 휘저으며 연설하듯 또박또박…”저도 반주 즐겨” 일상 표현도
윤 대통령은 변론 동안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임했다.
빠른 속도로 쟁점을 짚는 대리인단과 대조적으로 연설하듯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고, 책상을 주먹으로 가볍게 내려치며 강조하기도 했다.
대부분 자유 발언 형식으로 이뤄졌고 때때로 한 발언 안에서 여러 쟁점을 오가기도 했다.
2월 13일 8차 변론에서 조태용 국정원장 증인신문 이후 18분에 걸친 발언에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계엄 당일 전화한 경위부터 지난해 있었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 대사 임명 논란과 호주 호위함 수주 불발, 국무회의 적법성 논란 등 여러 주제를 오가며 설명했다.
또 홍 전 차장이 계엄 당일 저녁 음주를 한 것 같다고 주장하면서는 “저도 반주를 즐기는 편이라” 그 사실을 눈치챘다며 일상적 표현을 사용했다. “구치소가 어두워서 (곽 전 사령관의) 신문조서를 읽을 수도 없었다”는 상황 설명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계엄 전날 부인 김건희 여사와 조 국정원장이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의혹에는 작년 11월 자신과 김 여사가 휴대전화를 교체했음을 설명한 뒤 “통화 내역이 뭔지 사실 좀 궁금하다”고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