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원변호사의 H법정스토리
음력 구정 설을 쇠고 다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새해에, 이혼으로 깨지는 부부보다
이혼으로 치닫다 심기일전하여 다시 붙는 훈훈한 부부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김 씨 부부 사례입니다. 김씨 할머니는 85세 이십니다. 할머니가 소싯적 참 예쁘셨는지,할아버지는 할머니보다 5살 연하이십니다. 김씨 할머니, 하루는 구깃구깃한 영문 종이를 마켓 봉다리 속에 넣고 변호사를 찾아오셨습니다. ‘선상님, 이게 우리 영감이 내게 보낸 서류인데 이게 대체 뭐래는 거여유?’ 김치 국물이 묻어 있는 영문 서류를 받아 보니, 아뿔싸, 할아버지가 법원에 접수한 이혼 신청 소장이었습니다.
검게 그슬려 주글주글 해진 할머니 얼굴을 보니, 변호사, 순간 뭐라 설명해야 할 지 막막해집니다. ‘할머니, 이건 할아버지가 접수한 이혼 소장이에요.’ 할머니,‘워매 이를 어쩐댜, 아이구 이를 어쩐댜’를 염불하듯 반복하십니다.
할머니 말씀이, 최근 할아버지가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집에 늦게 들어오길래, 하루는 할아버지를 몰래 뒤따라 가보았더니, 공원에서 어떤 할머니하고 둘이 딱 붙어 앉아 그저 싱글벙글 너무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할머니, ‘에이 설마’ 하면서도 마음이 찝찝해 다음 날 다시 뒤따라가 보니, 또 그 할머니를 만나 둘이 서로 얼굴을 어루만지며 어찌나 다정한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합니다.
할머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 일찍 나가려는 할아버지 옷 자락을 잡아 앉혀서, ‘그 할매가 누구여?’ 다그치니, 할아버지, 시치미를 뗄 생각이 일도 없이, ‘그려, 내 애인이여, 어차피, 다 말하려구 했어. 나 이제 그 사람 하루도 안 보면 못 살 것 같어. 요즘에 그 사람 땜에 내 심장이 다시 뛴대니께’ 했다는 군요. 자, 그날 이후, 할아버지는 ‘기왕 들킨 거 내 인생 살란다’하고 소신 있게 집을 나갔다는 것입니다.
할머니, 변호사 손을 부여잡으시며, ‘선상님, 나 80 넘어서 이혼당하면 죽어서 조상님 앞에 얼굴을 못 들어유’ 연거푸 조상님 타령만 하십니다. ‘선상님, 나 이거 좀 무효로 해주쇼. 여기 오면 다 해준다 해서 내가 찾아 왔슈.’ 변호사,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자, 여기서 캘리포니아 가정법을 살피자면, 개인이 이혼 신청서를 법원에 접수하고, 상대방 배우자가 이혼 답변서를 아직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로지 이혼을 신청한 신청인만이 이혼 소송을 취소, 기각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으며, 이 때 소송 취하 신청서(REQUEST FOR DISMISSAL)라는 서류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변호사와의 첫 만남 이후, 할머니는 매일 아침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을 하십니다. ‘선상님,우리 영감이 취소 했씨유?’ ‘할머니, 아직 할아버지와 연락이 안되네요. 근데 그 큰 보따리는 뭐에요?’ ‘아, 이거, 우리 영감 먹을 밑반찬하고 갈아 입을 내복이여유. 우리 영감 승질이 뭣 겉어서,입이 짧어도 너무 짧어. 바깥 음식 입에도 안대유. 내복도 꼭 이 넘으로만 입어야 하고…’ 변호사,할머니 얘기에 할 말을 잃습니다.
이렇게 할머니는 변호사 사무실에 매일 보따리를 들고 한동안 출근하셔서, 혼자 셀프 커피 한 잔 찾아 드시고, 할아버지를 찾아 나서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변호사 사무실에 할머니가 혼자가 아니라 누굴 데려오셨네요. 할아버지 랑 나란히 함께요.
‘선상님, 우리 영감이 어제 밤에 집에 돌아왔씨유. 나랑 이혼 안한대유.’ 할머니는 할아버지 옆에서 변호사를 보며 연신 눈을 껌벅껌벅 열심히 무언의 신호를 보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싸인한 이혼 소송 취하 신청서를 변호사 손에 쥐어 줍니다. 변호사, 그 길로 할머니 서류 들고 법원으로 뛰어 달려갑니다.
며칠 후,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고 할머니가 또 보따리를 짊어지시고 들어오시네요. 변호사,너무 놀라, ‘오 마이 갓’ 연발합니다. 근데, 의외로 표정이 밝은 할머니, 그 보따리를 변호사 앞에 푸시더니, ‘아이구 선상님, 매일 얼마나 힘드슈, 삐쩍 말라서 밥도 제 때 못 먹구. 이거 우리 영감이 좋아하는 반찬들인데 선상님 생각이 나서…’ 변호사, 사무실에 퍼지는 반찬 냄새 속에 코 끝이 빨개지며, 또 다시 ‘오 마이 갓’.
자, 우리 김씨 할머니, 과연 조상님 볼 면목이 없어서 그러셨을까요? 집 나간 할아버지 반찬에, 내복에, 매일 보따리 싸 들고 할아버지 찾아 헤매이는 할머니. 일편단심 민들레,할아버지를 향한 평생 변치 않는 한 조각 붉은 마음, 사랑이지요.
(213)385-3773
<신혜원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