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거센 추격에 미국 관세 압박까지…겹악재 맞은 K반도체

삼성전자·SK하이닉스(CG) [연합뉴스TV 제공]

빅테크 부담 감안하면 관세 부과 제한적일 듯…불확실성은 여전

中 CXMT 점유율 확대에 기술 격차도 좁혀…”기술 개발 속도 높여야”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강태우 기자 =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재도약에 나선 한국 반도체 업계가 중국 메모리 업체들의 거센 추격과 트럼프발 관세 압박 등의 겹악재를 만나 또다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 반도체 수출 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 사실상 대체재가 없는 만큼 관세 부과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가뜩이나 중국 업체들의 저가 물량 공세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어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 트럼프 관세 부과 예고에 반도체 업계 긴장

12일 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앞으로 몇 주간 철강과 알루미늄뿐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의약품에 대해 들여다볼 것이며, 그외 다른 두어개 품목에 대해서도 볼 것”이라며 반도체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반도체는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현재 회원국 간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 협정에 반해 미국에 들어오는 반도체에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업계는 반도체에 부과될 관세의 세율과 적용 기준 등 향후 구체화할 방침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단순히 상대국에 상응하는 관세 부과에 그칠 경우 한국을 비롯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국가들의 피해는 제한되지만 철강 관세와 같이 보편 관세로 확장될 경우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전망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반도체 수출액은 106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미 반도체 수출 비중은 7.5%로, 중국(32.8%)이나 홍콩(18.4%), 대만(15.2%), 베트남(12.7%)보다는 낮다.

다만 조립·가공 등의 이유로 대만 등 다른 국가를 거쳐 미국에 수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세 부과 기준과 범위에 따라 직간접적인 피해 규모도 달라질 수 있다.

미중 갈등 심화와 AI 시장 확대에 따른 미국의 반도체 수요 급증 등으로 대중 반도체 수출 비중은 2023년(36.6%)보다 3.8%포인트 줄어든 반면 대미 반도체 수출 비중은 2023년(5.0%) 대비 2.5%포인트 늘어나는 등 반도체 수출 지형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2023년 3분기 누적 미국 매출액은 9조7천357억원(전체 매출의 45.4%)이었으나 2024년 3분기(누적)에는 27조3천58억원(전체 매출의 58.8%)으로 증가하며 3배 가까운 성장을 보였다. 전체 매출 중 미국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도 13.4%포인트 상승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반도체 관세 부과에 따른 공급 단가 상승은 미국 빅테크에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만큼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를 저지하는 등의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AI 반도체의 핵심인 HBM 시장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이 집중하고 있는 레거시(범형)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빠르게 점유율을 올리는 중국 업체의 발목을 도로 중국 내수시장으로 잡아둘 수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트럼프의 메시지는 명확하다”며 “대선 과정에서 얘기했듯이 보조금을 주지 않고 세금을 부과해 미국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짓게 하자는 것으로 반도체법을 미국 입장에서 효율화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반도체 관세 부과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도는 범용이 아닌 첨단 메모리 제조시설 구축”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려면 미국 내 생산라인 투자 유치를 하고 빅테크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자체가 대체재가 없는 만큼 당장 관세 부과로 큰 피해는 보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딥시크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국의 중국 제재 심화가 오히려 중국의 첨단산업 굴기를 가속화한 점도 눈여겨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댄 허치슨 테크인사이츠 부회장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는 고가 제품 시장에서 SK하이닉스·마이크론, 저가 제품 시장에서 (중국) CXMT(창신메모리)의 압박을 받는 넛크래커(nutcracker)에 낀 상황”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 중국의 반도체 굴기…범용 물량 공세에 HBM 등도 바짝 추격

실제로 최근 중국은 범용 메모리에서는 물량을 쏟아내며 시장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고 DDR5, HBM 등 첨단 메모리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D램 합산 점유율은 75.5%다. 미국 마이크론(22.2%)이 뒤를 이으며 3강 체제를 구축했다.

CXMT의 반도체 제품
CXMT의 반도체 제품[CXMT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다만 최근 FT 보도에 따르면 2020년만 해도 제로(0)에 가까웠던 중국 CXMT의 점유율이 지난해 5%로 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DDR4와 같은 레거시 제품만 만들던 CXMT는 작년 12월 HBM과 함께 AI 메모리로 주목받는 고성능 서버용 메모리 DDR5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미 CXMT를 포함한 중국 D램 업체들이 레거시 제품을 물량으로 밀어붙이면서 D램 가격도 하락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의 가격은 작년 8월 하락 전환한 뒤 9월(-17.07%), 11월(-20.59%) 두 자릿수 급락했다.

국내 업체들이 DDR4와 같은 레거시 제품 비중을 줄이고 선단 공정으로 전환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은 HBM에서도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CXMT는 이미 HBM2∼HBM2E 제품을 양산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중국에 HBM2 생산을 위한 28만㎡ 규모 공장을 건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메모리 반도체인 낸드 플래시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D램보다 플레이어가 더 많은 낸드 시장에서 지난해 3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솔리다임 포함)의 점유율은 총 55.6%다. 그 뒤를 일본 키옥시아(15.1%), 마이크론(14.2%), 웨스턴디지털(10.7%) 등이 잇고 있다.

중국 낸드 최대 업체인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에서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나 레거시 제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며 시장 가격 하락에 힘을 보태고 있다.

낸드 가격은 2023년 10월부터 5개월 연속 상승 후 보합세를 유지하다 작년 9월부터 4개월 연속 내림세를 보인 뒤 이달 반등했으나 올해 1분기에도 가격 하락세가 예상된다.

YMTC는 최근 1테라비트(Tb) 트리플레벨셀(TLC) 5세대 3차원 낸드가 적용된 소비자용 SSD를 생산했다. 현재 최고층 양산 제품인 SK하이닉스의 321단 제품보다는 낮은 270단으로 추정되지만 업계에서는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중국 SMIC는 2위인 삼성전자를 턱밑까지 따라왔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SMIC의 점유율은 6%로 3위를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9.3%로 2위를 지켰지만 전분기(2분기)에 5.8%였던 두 회사의 격차는 3분기에는 3.3%로 줄었다.

일각에서는 이를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침과 비교하기도 한다.

D램 시장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여개 업체가 난립했으나 ‘치킨 게임’을 통해 2009년 독일 키몬다, 2010년 일본 엘피다 등이 D램 산업의 주 무대에서 사라지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3강 체제’가 굳혀졌다.

허치슨 부회장은 CXMT에 대해 “빠른 성장세로 ‘눈덩이(snowball) 효과’를 만들고 있다”며 “이는 정확히 1980∼1990년대 메모리 부문에서 한국이 일본을 몰아낸 방식이며, 이제 비슷한 일이 한국에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삼성전자가 주도한 치킨 게임은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물량을 쏟아냈던 것”이라며 “지금 중국 업체들의 경우 물량 공세는 맞지만 첨단 테크보다는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종환 교수는 “최근 중국이 AI 반도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메모리, 파운드리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국 정부가 상당히 많은 관여를 하고 있다”며 “SMIC가 3나노 이하의 공정도 계획 중일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경계하며 기술 개발에 대한 속도를 높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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