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제, 새로고침
<상> STOP 권력 쏠림
① 눈엣가시 이준석 축출
② 권력 분산? 말만 책임 총리
③ 인사 전횡, 시행령 꼼수 정치
④ 야당과 힘 싸움, 결국 계엄
이준석을 축출할 때 말렸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때부터 제왕의 길을 걸었다.
8년 전 탄핵의 강에서 보수를 구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엔 보수를 계엄의 바다 속 깊이 빠뜨렸다. 임기 반환점을 갓 도는 기간 윤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막무가내로 휘둘렀다. 거대 야당의 어깃장에는 대화와 설득이 아닌 비상계엄 선포라는 막장 카드를 꺼내들었다. 1987년 헌법 이후 취임한 8명 대통령 중 유례없는 끝장의 정치. 자신과 보수는 물론 대한민국 전부를 침몰의 위기로 몰아넣는 최악의 수였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 개인에서 이유를 찾는다. 또 다른 측에선 ‘제왕적 대통령제’로 평가받는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눈을 돌린다. 한쪽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다른 쪽은 “헌법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본보는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과 각 부처, 국민의힘에서 참모와 실무진으로 일한 10여 명에게 ‘지난 3년’을 물었다. 그들은 디테일에서는 조금의 차이를 보였지만, 윤 대통령이 헌법이 몰아준 권한을 고집스레 사용하려고 했고, 그의 폭주를 법도, 또 다른 권력도 막을 길이 없었다는 결론엔 큰 차이가 없었다.
#1. 이준석 축출…”합리적 목소리를 짓밟았다”
‘정치 초보’ ‘0선 대통령’의 출발은 산뜻해 보였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에서 “단 하루도 머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겨버렸다. 이를 ‘개방과 소통’의 상징으로 삼았다. 검찰에서 자주 경험했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도 선보이며, 대국민 소통에 대한 의지를 내보였다.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과는 광주를 찾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영호남 화합’의 행보도 보였다. 국민들은 이에 화답했다. 취임 22일 만에 치러진 6·1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에 광역단체장 17곳 중 12곳을 몰아준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의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2022년 7월을 윤 대통령의 극적 변화에 대한 기점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바로 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성 접대 의혹’으로 징계·퇴출한 때였다.
이 전 대표 퇴출은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맞섰던 걸림돌 제거의 성격이 다분했다.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일했던 A씨는 이를 “권력의 무서움”이라고 표현했다. “법적 처리 결과를 보고 결정해도 될 사안”을 “친윤계가 (징계를) 밀어붙였다”는 설명. 그는 “당이든 대통령실이든 합리적 목소리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당을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만든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대선후보 토론회 당시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와 논란을 만들었던 윤 대통령에게서 ‘제왕의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다.
#2. 윤심(尹心) 논란…”여당은 대통령의 하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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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뛰던 당시 국회에서 이준석 대표와 함께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오대근 기자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여당인 국민의힘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정상적이라면 여당은 대통령에 쓴소리를 하면서, 국정 운영의 ‘비판적 동반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여한 헌법(제7조 2항)을 무시한 채,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하며 여당을 하수인으로 부리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었다.
실제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때마다 윤심 개입 논란에 홍역을 치러야 했다. 비윤(석열)계였던 나경원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막아선 이른바 ‘연판장’ 사태가 대표적이다. 대선 승리에 일정 부분 공을 세웠던 안철수 의원마저 당대표 출마 결심만으로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란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한때 ‘윤의 황태자’라고까지 불렸던 한동훈 전 대표도 예외 없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등 현안을 두고 갈등을 겪다, 종국엔 ‘배신자’로 철저히 배척을 당해야 했다.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B씨는 “윤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정 분리를 시도한 후 여당과 불화하며 국정 지지율이 떨어져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던 사례를 자주 예로 들었다”고 전했다. 당권을 유지하고 당을 장악해야 임기 끝까지 대통령으로서 힘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거대 야당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기 때문에 ‘1호 당원’인 대통령과 여당이 확실하게 힘을 모아야 국정과제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임기 내내 윤 대통령에게 끌려다녔다. 그 결과는 2024년 총선 대패였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무리하게 김태우 전 구청장을 출마시켰다가 홍역을 치렀음에도 대통령 눈치만 보다 정권 심판의 회초리를 호되게 맞은 것이다. 이로 인해 압도적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고, 불법 계엄 사태까지 부른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제어할 기회도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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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3. 권력은 오로지 대통령에게…말뿐이었던 “책임 총리”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인사권을 국무총리와 일정 부분 나누겠다고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국무총리에게 헌법(제 87조 1·3항)이 보장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보장하겠다고 약속, 일종의 ‘책임 총리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약속의 상징으로, 한덕수 초대 총리가 사인을 한 1기 내각 국무위원 추천서도 보여줬다.
하지만 공약(空約)에 불과했다. 대통령실과 여권 주변에선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를 전환점으로 꼽았다. 한 총리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질을 주장하면서 윤 대통령과 크게 충돌했고, 이후 두 사람은 국무위원 인사와 관련된 얘기를 잘 나누지 않게 됐다고 전해진다. 윤 대통령의 대권 도전 초반부터 캠프에 합류했던 C씨는 “역대 모든 정권이 책임총리로 권한을 나누겠다고 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DJP 연합’과 같은 선거 연대가 아니면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한 총리는 대선 과정에서 기여가 없고 대통령과 인연이 없었으니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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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오른쪽) 국무총리가 2022년 9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하기 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4. 인사전횡 그리고 정책 독주…”실세 차관 세우고 시행령 통치”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과 내각의 주요 자리에 서울대 출신, 검사 출신, 극우 인사, 김건희 여사 라인을 주로 앉혔다. 대통령이 결정한 주요 인사가 누구의 추천을 받았는지, 어떠한 검증과정을 거쳤는지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법이 정한 국회의 반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만 31명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가 5년 임기 동안 강행했던 34명 인사를 임기 반환점에 이미 다다른 것이다. 대통령실에선 윤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청년 비서관·행정관들이 수석·비서실장은 물론 장·차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논란이 됐다. 경찰·검찰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법무부의 수장에는 서울대 법대 후배(이상민)나 측근 검찰 출신(한동훈·박성재)을 앉혔다.
윤 대통령은 또한 ‘인의 장막’을 완성한 이후 여지없이 자신만의 성(城)을 쌓고 독주하기 시작했다. 소통 방식의 문제, 여권 내부의 갈등,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처신이 도마에 오르자 취임 194일 만에 출근길 문답까지 중단했다. 대신 국무회의·국정과제점검회의·비상경제회의 등 각종 회의 생중계를 통해 국회, 관료, 국민에게 ‘일방으로’ 정책을 전파했다. 대통령실에선 장·차관들에게 적극적인 정책 홍보를 하지 않는다고, 방송 출연 등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마치 라디오 연설에 열을 올렸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았다.
국정지지율은 20%대를 좀체 벗어나지 못하면서,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을 과감하게 강행했다. 정책의 방향도 ‘꼼수’로 점철됐다. 장관 인사청문회를 피해 ‘차관 정치’를, 입법부와 대화하는 대신 ‘시행령 통치’를 택한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 △시민단체를 겨냥한 보조금 제도 개편 △전기요금에 포함된 KBS 수신료 분리징수 △검찰 수사 범위 확대 △경찰국 설치 등이 대표 사례다.
#5. 김건희 특검법 3차례 거부…”수명 좀먹는 ‘제왕 권력'”
윤 대통령의 최대 리스크는 김건희 여사였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에 대한 의혹과 비판은 윤 대통령 임기 내내, 바람 잘 날 없었다. 윤 대통령은 사과 등에 인색한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공세적으로 추진하자, 윤 대통령은 3번 연속 재의요구권(거부권·헌법 제53조2항)으로 맞섰다. 국민적 비판이 거세진 후엔 어정쩡한 사과만 했다.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D씨는 “대통령이 한 발짝 움직이기 위해선 여러 사람이 대오를 짜 간언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 문제를 자신 있게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또한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비판이 쇄도했는데, 지난해 10월 들어서 제2부속실만 설치했다. 이미 윤 대통령 부부와 명태균씨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며 공천 개입 의혹이 일파만파 번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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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분열하고 있는 무기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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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부터 직무정지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결정적 장면. 그래픽=송정근 기자
#6. 거대 야당과 극한대립… 마지막 선택 ‘불법계엄’
윤 대통령은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며 정치를 하는 대신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고 고집하는 데만 골몰했다. 총선 직후 윤 대통령과 만났던 국민의힘 E의원은 “(사실상 여당 입법은 어려우니) 대통령이 헌법의 권한에서 거부권과 예산편성권을 적극 활용하도록 도울 테니 당 차원에서도 방법을 고민하라더라”고 기억했다.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만 11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야당의 계속된 입법 공세에 지난달 3일에는 급기야 “헌정질서를 파괴한 괴물”이라며 불법계엄을 실행했다.
정치권에선 87년 헌법 체제에선 대통령이 잘못된 선택을 해도 사전에 막을 장치가 없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한다. 윤 대통령이 감행한 극단의 계엄 선포도 헌법(제77조)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에선 심의를 하지만 찬반 의결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 조직인 대통령비서실도 역할을 할 수 없다. 정부조직법(제14조)에서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한다’,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한 명을 둔다’는 규정이 전부다.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마이웨이’ 대통령이 간신만 가까이하고 잘못된 판단을 해도 당이든 대통령실이든 부처든 시스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 “대통령제의 가장 큰 폐단”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