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조사 중 사고원인·피해·공항관리 등에 다양한 의문점
(서울=연합뉴스) 김보경 강태우 기자 = 지난 29일 오전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181명 중 179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피해 규모, 사고 원인, 공항 관리 등에 대해 다양한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지만 국토교통부 등 정부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아직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에 따라 항공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사고에 대한 쟁점과 이에 대해 제기되는 다양한 해석을 정리했다.
▲ 다른 항공사고에 비해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 = 사고 여객기인 제주항공 7C2216편은 착륙하는 과정에서 크게 세 차례 충격을 겪었다.
랜딩기어(착륙 바퀴) 없이 기체 바닥을 활주로에 대고 착륙하는 이른바 ‘동체착륙’에 따른 마찰 충격, 활주로 끝 콘크리트 둔덕, 외벽에 부딪히며 발생한 충돌 충격, 연료 누수 등에 따른 폭발과 화재에 따른 충격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큰 충격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항공기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파손됐고, 그 결과 승객, 승무원 등 181명이 탑승한 여객기에서 단 2명만 생존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 ‘버드 스트라이크'(조류충돌)와 랜딩기어 미작동과의 연관성 =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조류 충돌에 따른 엔진 이상 등으로 랜딩기어가 작동하지 않은 점이 지목되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공기에 탑재되는 엔진 2개가 모두 이상이 있을 때 APU(보조동력장치)가 작동되기 전까지 항공기 내 전자기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 결과 유압펌프와 전기계통으로 작동하는 랜딩기어가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또 일부 전문가는 엔진 이상 시 랜딩기어를 내리는 유압펌프 시스템에 이상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랜딩기어는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줄을 당겨 수동으로 내릴 수 있는데 이에 드는 시간은 20∼30초 정도로 알려졌다. 기장 등 조종사가 이러한 시간을 확보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는지 여부는 정부 조사 발표 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국토부는 전날 브리핑에서 “엔진 고장과 랜딩기어 고장은 일반적으로 상호 연동되는 경우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 기체결함·조종사 과실 등 다른 사고원인 가능성 = 전문가들은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다른 엔진과 제동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점은 의문을 제기되고 있다.
기체결함 여부도 사고 원인의 하나로 분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사고기 기령(비행기 연령)이 15년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노령화 문제라기보다는 기체 자체나정비 보수의 문제점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다 제주항공의 무리한 운항 스케줄이 기능 저하와 결함을 불렀다는 해석도 나온다.
또 비행기에는 랜딩기어 외에도 날개 위 에어브레이크와 엔진 역추진 등 여러 브레이크 장치가 있는데 동체착륙 중 이러한 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기체결함과 함께 조종사 과실 여부도 함께 판단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아울러 기장과 부기장이 동체착륙 전 항공유를 비우고, 관제탑에 화재 진압을 요청하는 등의 준비작업을 하지 않은 점도 의문점이다.
동체착륙을 하기 전에는 마찰로 일어날 수 있는 화염을 냉각할 수 있는 비누거품 물질을 뿌리는 준비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아울러 기장 요청으로 소방차 등이 대기하고 있어야 했는지 이번 사고에서는 이런 준비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조종사의 메이데이(조난신호) 이후 동체착륙까지 짧은 시간에 이뤄져 거품을 살포한다든지 하는 그런 상황은 파악이 안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과거에 비상동체 착륙 때 마찰을 줄이기 위한 거품을 뿌리는 방식의 규정이 있었는데, 최근 관련 규정은 없다”며 “오히려 거품 때문에 더 미끄러지거나 환경 문제 등 여러 문제로 규정에서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 콘크리트 구조물인 ‘로컬라이저 안테나’ 사고원인 여부 = 사고가 났던 활주로 끝 외벽 앞에는 둑형태의 두꺼운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고, 사고기는 이 구조물을 충돌한 후 바로 외벽에 부딪히면서 기체가 두 동강이 나고, 불이 났다.
이 구조물은 공항의 활주로 진입을 돕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안테나인 ‘로컬라이저’인데 이 로컬라이저가 지상 위로 돌출되지 않았다면 사고 피해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속으로 움직이던 사고기가 로컬라이저에 올라타며 동체가 분리됐고, 결국 폭발에 따른 화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로컬라이저가 금속 형태가 아닌 콘크리트의 돌출 구조로 만들어지는 것은 매우 드물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나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국제 규정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직 기장은 “여러 공항을 다니며 많은 안테나를 봤지만, 이런 종류의 구조물은 처음”이라며 “안테나를 더 높게 만들고 싶어도 콘크리트 벽을 건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영국 공군 출신 항공 전문가 데이비드 리어마운트도 스카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활주로 끝에서 200m도 채 안 되는 곳에 저런 구조물이 있는데 거긴 원래 장애물이 없어야 하는 곳”이라며 “설령 안테나를 둬야 한다고 해도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탈했을 때 크게 손상 입지 않도록 쉽게 부러지거나 접히는 형태로 두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행기는 활주로를 미끄러지며 이탈했는데 이때까지도 기체 손상은 거의 없었다”며 “항공기가 둔덕에 부딪혀 불이 나면서 탑승자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 동체착륙 시 활주로 vs 바다 = 일각에서는 영화 ‘허드슨강의 기적’을 예로 들며 활주로가 아닌 무안공항 인근 바다에 착륙했다면 더 큰 사고를 막았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영화는 2009년 미국에서 조류 충돌로 발생한 US에어웨이스(기종 에어버스 320) 사고에서 기장이 맨해튼 허드슨강에 기체를 착륙시키며 탑승자 155명이 모두 생존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만 해상 착륙의 경우 극히 제한된 경우에나 하는 것으로 수백㎞ 속도의 기체가 수면위에 충돌하는 것은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부딪히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특히 강이 아닌 바다에서는 조류가 세고 바위나 갯벌 등 지면 상태도 예측하기 어렵다. 또 사고 후 사망자 발생 시 시신 수습도 쉽지 않다.
장조원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해상착륙이) 가능이야 하겠지만 굉장히 위험하다”며 “양쪽 날개가 동시에 스무스하게 내린다고 하면 몰라도 약간이라도 틀어지면 물과 공기 저항이 달라서 기체가 완전히 돌아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철새 도래지에 공항이 있는 이유 = 공항 설립지를 철새 도래지가 꼭 지어야 하느냐는 의문도 따라 나온다.
무안공항 주변에는 현경면·운남면, 무안·목포 해안, 무안저수지 등 철새 도래지 3곳이 존재한다.
국내 대표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은 아예 철새 도래지인 갯벌을 간척해 건설했다. 김포국제공항이나 김해국제공항도 철새 도래지 주변이긴 마찬가지다.
또 김해공항, 청주공항, 군산공항뿐 아니라 신공항이 들어서는 가덕도 역시 철새도래지가 인근에 있다.
이처럼 공항들이 철새 도래지 쪽에 지어지는 것은 인적이 드물고 소음 피해가 덜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근영 한국교통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공항은 사람들이 많이 안 살고 장애물이 적은 곳에 지어지는 데, 국내뿐 아니라 해외도 이런 이유로 주로 바닷가 쪽에 짓는다”며 “이에 조류 충돌을 막기 위한 여러 활동도 자체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무안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보면 공항 운영 시에 조류기피제 사용이나 서식지 제거, 배수로 차단 등 조류를 회피하기 위한 여러 활동이 하게 돼 있고, 공항 운영기관에서 그렇게 활동을 해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