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트럼프 당선 후 처음 만난 국내 인사
정부 차원 트럼프 접촉 올스톱, 정용진 부각
“한국 저력 있는 나라” 트럼프 측에 설명
트럼프에 안길 선물 적어, 차분히 볼 필요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취임을 한 달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국내 정·재계 인사 중 처음 만났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불법 계엄 사태, 탄핵소추안 가결로 트럼프 당선자 접촉을 위한 정치·외교 라인이 공백 상태라 정 회장 행보는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정용진 채널’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전후로 지지부진한 미국과의 소통에 활용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정 회장은 21일(현지시간) 한국 귀국을 위해 찾은 미국 애틀랜타 공항에서 국내 취재진과 만나 “트럼프 당선자와 함께 식사하고 10~15분 정도 여러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 최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도 인사를 했다.
정 회장은 또 윤 대통령 탄핵 등에 대해 관심을 보인 트럼프 측에 “대한민국은 저력 있는 나라이니 믿고 기다려달라, 빨리 정상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알렸다. 단 트럼프 당선자와 한국 정세를 놓고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정 회장은 16일부터 이날 오전까지 트럼프 당선자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 초청으로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물다 트럼프 당선자와 회동했다. 트럼프 당선자의 자택이 있는 마러라고에서는 2025년 1월 20일 취임식 전까지 정권인수팀이 가동 중이다. 정 회장은 트럼프 주니어와 종교 등을 연결 고리로 수년 전부터 교류하는 사이다.
정 회장이 트럼프 당선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국내에선 일단 만남 자체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관세 폭탄 등을 예고해 정치·경제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트럼프 당선자와 처음 접촉했기 때문이다.
당초 한국 정부는 조현동 주미대사를 트럼프 당선자의 대선 승리가 굳어진 11월 6일 마러라고로 급히 보내는 등 트럼프 측과의 소통에 힘을 쏟았다. 윤 대통령은 다른 국가 정상과 비교해 비교적 빠른 11월 7일 트럼프 당선자와 통화했다.
“한계 있는 만남, 친분은 친분일 뿐”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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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마야요시 손(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불법 계엄, 윤 대통령 탄핵 이후 트럼프 당선자 접촉을 위한 정부 움직임도 사실상 올스톱됐다. 그러다 보니 정·재계에선 트럼프 당선자와의 관계 형성을 위한 외교전에서 뒤처지고 있는 정부 대신 정 회장이 존재감을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과거 정부 차원에서 원활하지 못했던 다른 국가와의 소통을 물밑에서 이어주곤 했던 기업인의 모습을 정 회장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당장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자 취임식 참석을 위해 한국 사절단이 만들어지면 다리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정 회장은 “한국 정부가 사절단을 꾸리면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정 회장과 트럼프 당선자 간 만남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진 않은지 차분하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 당선자의 사업가적 성향을 감안했을 때 이번 회동이 정치·경제적 진전을 위한 토대가 아닌 친교를 위한 대화에 그칠 수 있어서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가 미국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긴 하나 내수를 주력으로 하는 사업 구조상, 미국 투자 등 트럼프 당선자를 움직일 정도의 선물을 안기기 쉽지 않다.
트럼프 당선자가 정 회장 체류 시기와 겹치는 16일 미국에 1,0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마사요시 손(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건 그의 ‘기브 앤드 테이크'(주고받기) 면모를 알 수 있다. 일본에선 이날 기자회견을 계기로 취임 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를 만나는데 소극적이었던 트럼프 당선자의 기류가 바뀌었다고 평가도 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주니어와의 개인적 인맥으로 이어진 만남은 한계가 있다”며 “주고받기를 전제로 대화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분은 친분일 뿐이고 비즈니스(사업)는 다르게 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나 재계 단체의 공식 외교 채널·대화 창구를 통한 소통이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