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이티드 헬스케어 CEO 총격살인범에 동정 쏟아진 이유

미국 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UHC) 최고경영자(CEO) 살해 사건의 용의자 루이지 만조니가 10일 펜실베이니아주 홀리데이즈버그의 블레어 카운티 법원에 들어서면서 "미국인의 지성과 경험에 대한 모욕"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홀리데이즈버그=로이터 연합뉴스

건강 문제 고통 겪던 20대 엘리트가 범인
“부패한 보험산업 맞서는 영웅으로 생각”
‘보험사 분노’ 공유 미국 사회 동정 여론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UHC) 최고경영자(CEO) 총격 살해 사건 용의자가 보험산업을 ‘기생충’으로 묘사했던 성명문이 공개됐다. 부유한 집안 출신에 명문 아이비리그까지 졸업한 20대 엘리트가 건강 문제로 고통받으면서 미국 의료 서비스와 보험사에 분노했다는 데 공감하는 동정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미 당국은 기업 횡포에 맞설 수단으로 폭력이나 사적 처벌이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범인, 부패한 보험 산업 맞선다고 생각”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UHC CEO 브라이언 톰슨 살해 사건 용의자 루이지 만조니(26)는 자신을 부패한 건강보험 산업에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여겼다”고 전했다. 수사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그가 체포 당시 소지했던 3쪽 분량의 자필 성명문에는 “이 기생충들은 당해도 싸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미국 의료 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기업의 이익은 증가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그렇지 않다는 비판도 담겼다. 만조니는 이날도 법원으로 들어가면서 “이건 완전히 부당하고, 미국 국민의 지성과 경험에 대한 모욕”이라고 소리쳤다.

만조니는 지난 4일 뉴욕 미드타운 호텔 인근에서 톰슨 CEO를 총으로 살해했고, 도주 끝에 9일 펜실베이니아주(州) 알투나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체포됐다. 체포 당시 그는 3D 프린터를 통해 만든 ‘고스트 건'(일련번호 없는 유령총)과 보험사 비판 성명문을 소지하고 있었다.

‘부유한 엘리트’로 드러난 만조니의 면면은 이목을 끌었다. 그는 사립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아이비리그 명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CNN방송은 “그는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부유한 볼티모어 가문에서 자랐다”고 보도했다. 그는 독서 기록 플랫폼에 남긴 서평에서 기술문명을 반대한다며 폭탄 테러를 저지른 ‘유나바머'(Unabomber) 테드 카진스키를 “극단주의적 정치 혁명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UHC CEO 살해 혐의로 체포된 만조니(왼쪽 사진). 오른쪽은 그가 자신의 엑스(X)에 게시한 척추 엑스레이 사진. X 캡처

UHC CEO 살해 혐의로 체포된 만조니(왼쪽 사진). 오른쪽은 그가 자신의 엑스(X)에 게시한 척추 엑스레이 사진. X 캡처

구체적 범행 계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만조니는 극심한 허리 통증에 시달렸고 척추 수술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NYT에 따르면 2022년 그와 공동 숙소에 거주했던 지인은 “만조니가 서핑 레슨을 받은 뒤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며 “이후 그는 ‘허리 상태 때문에 데이트를 하거나 육체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연애를 포기했다’고 털어놨다”고 말했다.

대중 공감 산 ‘보험사 횡포’

미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그에 대한 동정 여론이 퍼지고 있다고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이 이날 보도했다. 사건 이후 SNS에서는 보험사 CEO 살해에 기쁨을 표하거나 보험업계의 ‘사전 승인’ 제도를 비꼬는 등 통쾌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사전 승인’은 특정 치료나 약물 처방 전 보험 회사의 승인 절차로, 긴 시간이 소요돼 환자가 제때 치료받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다. 미국 AP통신도 “이번 사건으로 미국인들이 보험사와 얽힌 각자의 사연을 공유하면서 짜증, 분노, 원망, 무력감 등 대중적 감정이 촉발됐다”고 설명했다.

만조니가 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알투나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경찰 요구로 마스크를 벗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경찰 제공·로이터 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만조니가 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알투나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서 경찰 요구로 마스크를 벗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 경찰 제공·로이터 연합뉴스

만조니를 신고한 맥도널드 매장은 ‘별점 테러’를 당해 구글이 리뷰 삭제에 나서기도 했다. 한 리뷰의 내용은 “이곳 주방에선 쥐가 나와 (다녀가면) 병에 걸릴 수 있는데, 보험사는 보상해주지 않을 것”이었다고 영국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미 당국은 ‘사적 정의’를 추구한 살인범이 영웅시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펜실베이니아주 주지사 조지 셔피로는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시민사회에서 이념가들이 자경단이 되면 우리 모두는 덜 안전해진다”고 호소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도 “폭력은 어떤 기업의 탐욕에 맞서는 것이든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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