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국민 투표권 무시” 분노…광화문 “우리가 이겼다” 환호
탄핵안 폐기에 국회앞 순간 정적
광화문 보수단체는 축제 분위기
아이돌 응원봉에 ‘가상단체’ 깃발
커피·김밥 등 음식 무료나눔까지
젊은세대 참여 시위 문화도 눈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7일 오후 9시 26분.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해 국회 재적의원 미달로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0만여 명의 시민이 모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현장을 지키고 있는 대다수의 시민들은 말을 잃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뉴스가 나오는 전광판만 응시했다. 시민들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스크린을 향해 “국민의힘 해체하라” “말이 되지 않는다”며 고성을 내질렀다. 일부 시민은 국회의사당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몇몇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집회 현장의 표정은 시시각각 달라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으로 침울했던 분위기는 안철수·김예지·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투표를 했다는 소식에 순식간에 바뀌었다. “혹시 모른다” “이제 시작이다”라는 희망에 찬 말도 나왔다. 그러나 이후 김상욱 의원이 투표를 마치고 나와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히자 이내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시간이 흐르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표결을 마치겠다고 한 오후 9시 20분이 다가와도 추가 투표 소식이 없자 시민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시계만 바라봤다. 개표가 시작되고 끝내 투표가 성립되지 않자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시민들은 “반대를 하더라도 투표는 했어야 한다”며 분노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강 모(33) 씨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국민의 ‘투표권’을 완전히 무시한 행위”라며 “당연히 정치 진영에 따라 탄핵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고 아쉽기는 하지만 반대표를 던져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회의원이 투표 행위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을 뽑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7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광화문 국민혁명대회’ 참가자들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 부결과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관한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같은 시각 보수 단체가 집결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국회 상황을 TV와 스마트폰 등으로 지켜보던 집회 참여자들은 “우리가 이겼다”고 환영했다. 한 여성 지지자는 울부짖으며 무릎을 꿇은 채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탄핵안 투표 불성립 소식이 들리자 비상계엄의 배경으로 추론되고 있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 중랑구에서 온 안 모(54) 씨는 “탄핵 부결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제 남은 건 배신자들을 솎아 내야 하는 것”이라며 “제2의 탄핵을 한다고 하는데 이를 저지하러 계속 나올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4·10 부정선거의 진실을 촉구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탄핵 표결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시민들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집회를 이어갈 방침이다. 실제로 8일 오후 3시 윤 대통령 탄핵 무산에 반발하는 시민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윤석열 체포” “즉각 퇴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촛불행동 등은 앞으로 윤 대통령의 퇴진까지 매주 주말 여의도 근처에서 집회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보수 단체 또한 광화문 등지에서 윤 대통령 지지 집회를 벌일 계획이다.
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시민들이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장형임 기자
한편 이번 집회에서는 이전 대규모 집회와는 다른 시위 양상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1020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아이돌 응원봉’의 등장이다. 일부 젊은 세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기 아이돌 그룹을 응원할 때 사용하는 도구인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어두운 콘서트장 등에서 사용되는 응원봉은 발광(發光) 기능이 있어 시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처음 등장했던 재치 가득한 문구가 적힌 깃발들도 다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시민들은 실제 단체가 아닌 자신의 취미나 관심사 등을 이용해 가상의 단체명을 만들어 깃발을 제작해 거리로 나섰다. “복학 전에 탄핵하라”는 ‘전국 휴학생 연합회, “제발 그냥 누워 있게 해줘라”고 외치는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등이 대표적이다. 종이로 된 ‘전국 깃발 준비 못한 사람 동호회’도 웃음을 자아냈다.
음식 나눔 현상도 눈에 띄었다. 여의도 집회 장소 인근 인근 일부 카페는 ‘부담 없이 음료 가져가세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시민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나눠줬다. 몇몇 집회 참가자들은 전날 저녁이나 이날 오전 일찍 특정 도시락 가게나 김밥 전문점에 ‘선결제’를 하는 형태로 음식 무료 나눔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특정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주도로 이뤄졌던 집회가 국민 개개인이 주도하는 집회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연령대 또한 중장년층에서 점차 젊은 세대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주말에 국회 앞에서 이뤄진 집회도 당초 민주노총이 선순위로 신고를 했지만 집회가 이뤄지지 않아 후순위인 촛불행동이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