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기에 술자리가 잦을 수밖에 없다. 1년 동안 자주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회포를 풀다보면 자연스럽게 술이 한 잔씩 들어간다. 취기가 오를수록 흥도 오른다. 한국인의 음주가무는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럿이 어울려서 술 마시고 노는 행위를 좋아했다. 오죽하면 과거 조선시대에도 술고래와 비슷한 표현이 존재했을까. 고래가 물을 마시듯 술을 마신다고 하여 ‘경음(鯨飮)’, 또는 용에 비유하여 ‘주룡(酒龍)’이라 불렀다. 사랑하는 마음만큼 술잔에 술을 부어주는 민족답다.

요즘에는 술을 주로 특별한 날에 마시지만 과거에는 차를 대신하는 음료로 그 역할을 했다. 양반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술을 대접했다. 다만 이 때는 술판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한두 잔 정도로 마시곤 했다. 또한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에게는 술이 음식의 기능을 했다. 일꾼들에게 밥을 지어 낮참을 제공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럴 땐 막걸리로 대신했다. 이 때의 술은 단순한 기호음료를 넘어 영양과 칼로리 섭취가 가능한 음식으로서 역할을 했다. 취기 오른 일꾼들은 막걸리 힘으로 밭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15세기 농서 <금양잡록>에는 김매러 갈 때면 술 단지를 잊지 말라고 적혀 있을까. 그만큼 술은 우리 민족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과거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도 농사꾼을 위한 술만은 예외였다. 농사할 때 마시는 탁주는 금주 대상에서 종종 제외되었다. 예외의 경우는 또 있었다. 혼례, 상례, 제례, 헌수 등 의례에 사용되는 술은 금하지 않았다. 술은 신과 인간은 연결해주는 매개체로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에 다 같이 술을 나눠 마시는 음복문화는 술이 공동체 구성원간의 결속력을 돈독히 다져준다고 여겼다.

술은 세시풍속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새해 첫날 차례상에 올리는 술은 ‘세주(歲酒)’ 또는 ‘도소주(屠蘇酒)’라고 불렀다. 악귀를 쫓는다는 뜻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쳐준다고 믿었다. 이 외에도 정월 대보름에는 ‘귀밝이술’, 9월 9일 중앙절에는 ‘국화주’를 마셨다.

고대국가부터 제천의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도 바로 술이다. 조선시대에 매년 10월마다 서원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실시했다. 향음주례는 학덕과 연륜이 높은 분은 주빈으로, 유생을 내빈으로 모셔 베푸는 주연이다. 이 때에도 역시 술을 권하며 나눠 마셨다. 술 마시는 문화가 일상생활 속에서 예절을 지키며 자리 잡길 바랐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술은 우리에게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과거부터 술을 즐겼던 우리 민족에게 연말 술자리를 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로 마신다고 하더라도 과음은 건강을 해친다. 안주라도 똑똑하게 챙겨먹는 센스가 필요하다. 이럴 때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팽이버섯 전’을 소개한다. 먼저 팽이버섯을 잘게 잘라 계란, 모짜렐라 치즈, 전분, 소금을 넣고 잘 섞는다. 기호에 따라 매콤한 청양고추나 페퍼론치노, 가쓰오부시를 소량 넣어줘도 좋다. 기름을 두른 팬에서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전을 부치면 완성이다. 좀 더 풍성하게 먹고 싶다면 오징어나 새우를 잘게 썰어 넣어도 좋다.

버섯은 건강한 안주 음식으로 손꼽힌다. 버섯에는 술로 인해 손상되는 뇌세포에 영양 공급을 해주며 간의 독성을 완화시키는 생리활성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말 술자리를 피할 수 없다면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즐겨보는 건 어떨까.

이주현 푸드칼럼니스트·요리연구가

0
0
Share: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