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팬들이 만든 ‘밈코인’ 등장
‘정부효율부 수장’ 맞물려 수만% 치솟아
글로벌 3200여종 밈코인 덩달아 급등
“팬덤에만 의존, 변동성 극심”
“가장 위험한 자산 중 하나” 경고
최근 세계 가상화폐 시장에 미국 차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설치될 신생 부처인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약칭 D.O.G.E)의 이름을 딴 신종 도지코인 여섯 종류가 등장했다. 도지(Doge)코인 옹호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2일 정부효율부 수장에 내정되고, 해당 부처의 명칭조차 도지코인과 유사한 것으로 드러나자 유행을 좇아 순식간에 생겨난 것이다. 이들 코인 중 한 종류는 20일 현재 가격이 첫 거래일 대비 380배 넘게 상승했다. 이 코인들은 국내 거래소엔 상장돼 있지 않지만 여러 해외 거래소를 통해 매매할 수 있다.
기존 도지코인이나 신종 도지코인 모두 인터넷상 유행을 좇아 만들어진 ‘밈(meme)코인’에 속한다. 밈코인을 옹호해 온 머스크가 대선 기간 동안 가상화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에게 중용되자 밈코인 전체의 시장 가치도 폭등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 중인 밈코인 3,200여 종류의 시가총액은 한 달 새 2배 가까이 뛰었다.
그러나 가상자산업계 전문가들은 현실 보유 자산 등으로 활용돼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받는 비트코인과 달리, 밈코인은 실질적 가치가 없는 데다 변동성이 심하므로 ‘투자’보다 ‘투기’에 가까워 시장 참여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9,400억 개 풀린 ‘머스크 추종’ 코인, 일부는 3만 % 이상 올라
글로벌 가상화폐 시황플랫폼 ‘코인마켓캡’ 등에 따르면, ‘정부효율부’란 이름을 걸고 나온 신생 도지코인들은 트럼프가 대선 전 머스크와 정부효율부 설치 여부를 논의하던 8월부터 생겨나 거래되기 시작했다. 당시 머스크는 자신이 약칭 ‘D.O.G.E’로 불릴 정부효율부 수장을 맡을 것을 암시하는 합성사진과 함께 ‘나는 기꺼이 (장관으로서) 봉사하겠다’는 글을 엑스(X)에 올렸다.
정부효율부 코인들은 몇 분간의 프로그래밍으로 채굴도 아닌 ‘발행’이 가능하고, 발행자 마음대로 수량을 사실상 무한정 늘릴 수 있는 밈코인의 생성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21일 오전 현재 시장에는 약 9,420억 개의 코인이 정부효율부 명패를 달고 유통 중이다. 복잡한 수학문제를 무수히 풀어도 2,100만 개 이상 채굴할 수 없는 비트코인과 달리, 밈코인 발행자들은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은 코인을 발행하며 유통량을 늘릴 수 있다. 이들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머스크 팬들에게 해당 코인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투기 수요가 몰려 가격 상승률도 엄청나다. 제일 먼저 발행됐고 시가총액도 약 3,240억 원에 달해 가장 많은 한 정부효율부 코인의 경우 20일 오후 6시 기준 개당 가격은 거래소 상장 시점인 8월 대비 3만8,500% 상승했다. 나머지 코인 다섯 종류 중 세 종류의 개당 가격도 첫 거래 이후 현재까지 수백 %씩 뛰었다.
정부효율부 코인만 폭등한 게 아니다. 전 세계 거래소에 상장된 약 3,250종류의 밈코인 가격도 크게 뛰었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20일 현재 162조 원으로 지난달 20일(82조 원)보다 100% 가까이 올라 같은 기간 비트코인 시총 상승률(약 44%)의 2배를 넘겼다. 밈코인 시총은 특히 12일 머스크가 정부효율부 책임자로 공개되기 이틀 전부터 크게 들썩였다. 10일 102조 원에서 이틀 뒤 142조 원으로 40조 원 올랐다. 올 들어 가장 큰 상승폭이었다.
“아이콘 등극→사업에 이득”…국내 밈코인 시장도 ‘경보’
투기성이 강한 밈코인의 유행에는 머스크의 지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머스크가 공개적으로 관련 게시물을 X에 올리며 지지 의사를 표했던 밈코인만 해도 도지코인을 포함해 최소 네 종류다. 모두 글로벌 시총 상위 10위 내에 포진해 있다.
머스크는 왜 밈코인을 띄우는 것일까. 그가 도지코인을 처음 지지한 2021년 이후의 행보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당시 머스크는 비트코인을 테슬라 제품의 결제 수단으로 채택한다고 했으나, 비트코인 채굴이 탄소 배출을 늘린다는 우려가 나오자 이를 철회했고 그 뒤부터 (채굴이 필요 없는) 도지코인을 지지했다”면서 “머스크가 밈코인을 홍보하는 것은 본인이 ‘밈코인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고, 테슬라의 글로벌 입지도 함께 다지려는 사업 전략의 하나로 보인다”고 짚었다.
머스크의 전략은 국내 밈코인 시장의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블록체인 시장 분석 기업 디스프레드 에 따르면 도지코인은 이달 7~13일 사이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약 24조9,000억 원을 끌어모아 상장된 암호화폐 중 가장 많은 거래대금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비트코인 거래대금(약 13조9,000억 원) 규모를 크게 제쳤다.
머스크가 최근 지지한 밈코인 ‘페페’도 국내 자금 유입이 활발하다. 지난해 4월 발행된 페페는 머스크가 올 3월 X에 관련 캐릭터 이미지를 올려 인지도가 높아졌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 14일 상장된 페페는 19일 “입금량 급등 발생”이라는 경보가 뜨기도 했다. 업비트 관계자는 “(특정 종목 코인에) 최근 24시간 유입된 자금이 전날보다 100~300% 이상 급등할 경우 해당 경보를 띄우고 있다”고 했다.
“특성은 ‘무가치’…최고 위험 자산”
그러나 전문가들은 밈코인이 △유명인 등에 의해 변동성이 크게 좌우되고 △실질 가치가 없음에도 팬덤에만 기대는 특성 때문에 시장에 참여할 때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머스크 같은 인플루언서가 분위기를 만들면 값이 폭등하는 게 밈코인의 특징이다. 이때 시장 참여자는 가격 상승의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 ‘묻지마 투자’에 빠진다”고 말했다. 이어 “폭등 장세에선 내 것을 타인이 더 비싸게 사주면 된다는 심리로 변동성 리스크를 과소평가한다”며 누군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 폭탄 돌리기를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도 “밈코인은 내재 가치 없이 팬덤 위주로 시장가가 좌우돼 가장 위험한 자산 중 하나로 꼽힌다. 신중히 판단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모티브로 만든 스퀴드코인이나 진돗개와 도지코인을 합성한 진도지코인 등 새로운 밈코인을 발행한 후 얼마 안 돼 발행 주체가 보유 물량을 매각하고 잠적해 버리는 등 ‘사기’에 가까운 행태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일각에선 밈코인이 전통 금융산업과 연계돼 실질적인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동혁 디스프레드 연구원은 “미국 대형 자산관리사 반에크는 지난 4월 도지코인과 페페 등 유명 밈코인 6개의 가격을 묶어 밈코인 지수펀드를 출시했다. 커뮤니티만으로 성장한 밈코인이 금융기관의 관심을 받아 실제 상품까지 출시된 점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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