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가능성 전혀 대비 못한 민주당
판결 ‘비정상성’을 원인으로 꼽지만
원인① 양형조차 못 말하는 일극체제
원인② “유력 대선주자인데” 여의도 논리
다양성 회복하고 오만함 경계해야
지난 1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1심 선고가 이뤄지던 시간. 이 대표에게 징역형 집행유예가 내려진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중앙지법 앞에서는 지지자들의 비명과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환한 얼굴로 이 대표를 기다리고 있던 민주당 의원 70여 명의 얼굴도 급격히 굳어졌습니다. 사색이 된 채 기도를 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의원들까지 보였습니다. 재판을 마치고 걸어나온 이 대표도 굳은 표정으로 충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의원들은 이번 선고에 대해 “전혀 예상치 못했다”며 얼얼해하는 반응입니다. 심지어 이 대표의 사법 대응을 책임졌던 율사들조차 최악의 경우로도 당선 무효 기준선을 넘은 ‘100만 원 이상 벌금형’까지만 검토했다고 혀를 내두릅니다. 금고형이 나올 경우 향후 10년 간 피선거권이 박탈될 수 있음에도, 내부적으로도 전혀 대비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다 민주당의 예측은 서초동의 판단과 이렇게까지 어긋났을까요.
민주당 의원 단체대화방에선 “유죄 전제 마라”
민주당은 대외적으로는 이번 판결의 ‘비정상성’을 이유로 짚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선고 직후 처음 열린 민주당 기자간담회에서 박균택 당 법률위원장은 ‘법률위가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건에 대해 많은 분들에게 물을 때 ‘당연히 무죄가 나온다. 증거로도 무죄고 법리로도 무죄고 유죄가 나올 수 없는 사건이다'(라고 했다)”고 항변했습니다. 당 검찰독재대책위원회 측도 “원칙과 법리를 다 따져봐도 상식적이지 않은 판결이었어서 예측 자체가 불가했다”며 “아무리 검찰독재정권이어도 인권의 최후 보루인 법원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①’친이재명(친명)계의 과도한 충성 경쟁’을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박 위원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율사 의원들이 22대 총선에서 이 대표로부터 공천을 받아 입성한 초선들인 만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고언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민주당에 오래 몸담은 인사는 “같은 법률가 출신인 이 대표가 무죄를 확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초선 율사들이 반대되는 얘기를 하긴 어려웠지 않았겠냐”고도 말했습니다.
특히 이 대표의 사법 대응을 담당하는 친명 의원들이 의원총회 등에서 혐의를 설명했던 방식도 안이함을 키운 것으로 비칩니다. 재선 의원은 “당에서 (이 대표 사법 문제를) 설명해줄 때 사안을 단순화해서 설명하니까 대부분이 ‘에이 그래? 설마 유죄가 되겠어’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며 “이번에 법원 해설자료를 보니 쟁점이 훨씬 복잡했고, 유죄일 수도 있는 사안인 것을 사후에 알았다”고 했습니다. 다른 초선 의원은 “당에서는 선거법 재판에선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몰랐다’만 쟁점인 것처럼 설명해왔는데, 정작 골프 사진 발언이 더 중요한 쟁점이었던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도 말했습니다. 의원들이 이 대표의 재판 내용을 전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친명계가 이 대표 혐의의 일부분만 설명하면서 무죄 논리만 설파한 것입니다.
심지어 판결 전까지 민주당 의원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작용했던 룰도 있었습니다. 이 대표의 유죄를 전제하지 말고 무조건 ‘무죄’라고만 주장하라는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이 모두 들어가 있는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에선 “방송에 나가는 분들 중에 유죄를 전제로 형량을 말하는 분이 있는데, 다 무죄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말아달라”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이에 하나둘씩 의원들이 입을 닫으면서, 실제 법리와 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죄 가능성조차 터놓고 다루지 못하는 “이 대표 일극체제의 부작용”이라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유력 대권주자에게 설마”… 여의도 문법의 오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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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뉴스1·AP
②법리를 지나치게 ‘여의도 문법’으로 해석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판결을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은 공통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사례를 언급하면서, 사법부가 ‘유력 대권주자’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친명계 좌장으로 꼽히는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MBC라디오에서 이 대표의 상황을 트럼프 당선자에 빗댔습니다. 지난 7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트럼프 당선자의 면책특권을 인정했던 판결을 “국민들의 선택권을 그런 것(사법)으로 박탈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이 대표 판결에 대해) 판사들도 신중하게 판단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의도 문법으로는 이 논리가 힘을 받을 수 있지만, 실제 법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트럼프의 사례와는 시기상 차이가 큽니다. 트럼프 당선자의 면책특권 인정 판결도, 성추문 입막음 혐의 관련 선고 연기도 각각 대선 4개월 전, 2개월 전에 이뤄졌습니다. 그에 비해 이 대표의 경우 당장 선거를 목전에 둔 것은 아닙니다. 즉, 국민들의 선택권이 사법부 판결로 크게 침해받는다는 민주당의 논리에는 다소 비약이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 야권 인사는 “1년 전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을 ‘제1야당 당대표’라는 지위 덕분이라 착각해왔던 것이 오히려 이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판결 흠집내기 앞장… 그보다는 다양성 회복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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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열린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은 1심 선고 이후 사법리스크를 불식시키려 ‘여론전’에 혼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장외집회로 세를 과시하거나, 지도부 회의 등 공개 발언 자리마다 이 대표 무죄를 호소하면서입니다. 이는 무리한 사법부 흔들기로도 이어집니다. 일부 강성 의원들이 지지층을 의식해 “오죽하면 서울 법대 나온 판사 맞냐고 하겠냐(김민석 수석최고위원)”며 판결과 무관하게 판사를 흠집내거나, “사법 살인(박찬대 원내대표)”이라며 사법부를 공격하는 과도한 발언도 난무합니다. 당내에서도 “2, 3심이 남아 있으니 이제는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에 민주당이 진정으로 사법리스크를 해소하고 싶다면, 다양성을 회복하고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지금과 같이 여론전에만 지나치게 목맬수록 민심과 법리와 괴리만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언로를 열고, 낮은 자세로 사태를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이 사법리스크를 줄일 최선의 방책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