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미 대선이 끝났다.
대선 기간 대통령 후보를 겨냥한 전례 없는 암살 시도가 있었고, 대선을 불과 100여일 앞두고는 현직 대통령이 후보직을 사퇴했다.
8년 전 힐러리 클린턴에 이어 다시 여성이 대통령 후보로 등장했고 초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런 장면 외에 이번 대선에서는 또 하나의 ‘낯선’ 장면도 있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일찌감치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머스크는 단순 지지에 그치지 않고 막대한 선거 자금을 기부하는가 하면 유세 현장에서 직접 연단에 올라 지지 연설까지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가 공개적으로 특정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하고 표를 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다. 정경유착의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지지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정치 보복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머스크의 행동은 신선하기보다 어색하고 이상함에 가깝다.
미국 기업들도 대개 정치 자금 기부를 통해 특정 후보에 암묵적인 지지를 표명해 왔다는 점에서 그의 행동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머스크다웠다’는 평가다.
그래도 머스크는 솔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미국 유수의 기업 수장들은 기다렸다는 듯 트럼프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 CEO 마크 저커버그, 구글 모회사 알파벳 CEO, 여기에 챗GPT 개발한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트럼프에 축하의 글을 띄웠다.
누구라도 대통령 당선을 기쁜 마음에 축하할 수 있지만, 이들의 메시지는 단순 축하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2016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는 무시하던 이들이 8년 후에는 완전히 다른 저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를 우주로 보내자’로 조롱했던 베이조스도, 트럼프의 계정을 차단하며 각을 세웠던 저커버그도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들의 저자세는 어느 정도 예견되긴 했다. 지난 7월 트럼프 암살 시도 사건 발생 시 이들은 트럼프의 안부를 묻는 전화 통화를 하고 쾌유를 기원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쿡 CEO는 그러면서 트럼프에 “유럽연합(EU)이 150억달러 과징금을 부과한 데다 20억 달러의 과징금도 또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치 밖에서 맞고 온 아들이 엄마한테 가서 “쟤 혼내줘”라고 이르고, 서로 잘 보이려고 ‘아부’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광경이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일궈낸 기업인데, 유럽에서는 반독점을 이유로 빅테크에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려고 하고 있고, 이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미 당국이 나서서 과징금은 물론 기업을 분할하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로서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이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제프리 손넨펠드 예일대 경영학 교수는 “경영진이 트럼프와 관계를 다지는 것은 옳은 선택”이라며 “백악관에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주주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치와 경제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이며, 상호보완적이면서 대등한 관계라고 배운다. 정치와 경제의 유착은 부패로 이어지며 이는 결국 사회 발전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이들 기업은 시가총액에서 보나 기술적으로 보나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혁신적인 기업들이다. 2022년 11월 출시된 챗GPT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인공지능(AI)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창출해가고 있다.
이런 기업들조차 마치 정치권력에 줄을 서는 듯한 모습은 낯설기만 해 보인다.
앞으로 후대들에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한편으로 자못 씁쓸해지는 미 대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