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전술·하이푸 치료로는 근본 치료 한계
유산·조산 원인 되니 임신 전 검사받아야
저출산 해소 위해 자궁근종 R&D 지원 필요
“9.8㎏짜리 근종을 떼어낸 적도 있어요. 일상생활에 불편한 게 없다면서 임부복 같은 펑퍼짐한 옷을 입고 온 미혼 여성이었는데, 비만이어서 배가 나왔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아기 세 명 무게의 근종을 자궁에 달고 있으면서도 몰랐던 겁니다.”
김미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결혼‧출산 시기가 늦어지면서 자궁근종도 크게 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자궁근종은 자궁에 생기는 양성 종양으로, 자궁근종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8년 약 39만 명에서 2022년엔 약 61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김 교수는 “자궁근종이 왜 생기는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저출산과 관련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자궁근종은 자궁 내 근육층의 세포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나 생깁니다. 그런 다음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면서 커지죠. 임신과 수유 중인 여성은 배란이 안 되니 여성호르몬 영향도 덜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은 계속 배란을 하니까 여성호르몬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자궁근종이 생길 가능성도 커지는 겁니다.” 한국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은 1997년 25.7세→2013년 29.6세→2023년 31.5세로 점점 늦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여성의 초산 평균연령(33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결혼‧출산 시기가 늦어진 탓에 자궁근종 발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궁근종이 임신에 악영향을 주면서 출산율을 낮추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말이다. 실제 자궁근종은 위치와 크기에 따라 난임을 초래할 수 있다. 김 교수는 “과거엔 사막을 오가는 낙타가 임신하면 물자 수송 등을 못 하니까 낙타 암컷 자궁에 자갈돌을 넣었다고 한다”며 “자궁근종이 자궁내막에 가까운 경우 수정란의 착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큰 근종은 자궁 모양까지 변형시켜 임신을 어렵게 한다”고 설명했다. 자궁근종은 생리통과 생리과다, 골반통도 야기한다. 근종이 큰 경우 주변 장기를 압박해 배뇨‧배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자궁근종을 치료하는 방법은 여럿이다. 색전술은 자궁근종으로 이어지는 혈관을 색전물질로 막아 영양분‧산소 등을 공급받지 못한 근종을 괴사시키는 방법이다. 하이푸 치료는 고집적 초음파를 자궁근종에 쏘는 방식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가임력을 보존하고 임신을 원하는 여성에게 가장 근본적인 치료는 수술로 자궁근종을 떼어내는 것”이라며 “로봇수술은 손떨림 보정 기능을 갖추고 있고 10배까지 확대가 가능한 3차원(3D) 영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복강경 수술보다 정확하게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봇수술은 의사가 조종석에 앉아 3D 영상을 보면서 로봇팔과 내시경 카메라를 조종해 수술하는 방식이다. 의사가 앉아서 수술을 진행하기 때문에 장시간 수술에서 오는 피로도도 덜하다. 서서 수술하는 것보다 더욱 수술에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자궁내막 등 정상 자궁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다양한 크기‧위치에 있는 자궁근종을 정밀하게 제거할 수 있어 로봇수술은 자궁 손상이 다른 방법보다 훨씬 덜하다”며 “수술 위치가 깊은 곳을 봉합할 때도 로봇을 이용하니까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자궁근종 로봇수술은 손떨림 없이 자유롭게 구부리고 회전하면서 자궁내막과 자궁근육층 등을 탄탄하게 봉합할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는 최근 로봇수술 5,000건을 달성했다. 자궁근종 및 자궁선근증 절제술이 3,273건(67.3%)으로 가장 많았고 자궁절제술(749건‧15%), 난소낭종절제술(478건‧9.4%), 부인암수술(360건‧7.2%) 등이 뒤를 이었다. 자궁근종·자궁선근증 절제술은 국내 최다로, 그중 절반 이상을 김 교수가 집도했다. 그만큼 다양한 환자가 그를 거쳐 갔다.
“한번은 40세인 미혼여성이 왔어요. 자궁근종이 많고 나이도 있으니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분이었는데, 다행히 수술이 잘돼 43세에 자연 임신을 했습니다. 자궁근종 108개를 떼어내거나, 중학생에게서 자궁근종 10㎝짜리를 본 적도 있어요. 수술이 끝나고 나면 환자들이 활짝 웃으며 말할 때가 많거든요. 그 웃음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낍니다.”
김 교수는 “자궁근종이 있으면 유산과 조산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임신계획 전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20대부터 받는 국가건강검진에 자궁경부암 검사가 있거든요. 자궁경부에서 세포를 채취해 암이 있나 보는 건데, 이걸로는 자궁근종 여부를 확인할 순 없어요. 건강검진 받았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궁 내 근종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자궁근종을 치료한 환자의 상당수는 자궁근종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정기적으로 자궁근종 발생 여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수술 외에 약물 치료법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간접적인 방식 말고 근종에 직접 작용하는 약물 치료법의 필요성이 크지만, 연구개발(R&D) 비용 지원이 미비해 기초연구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에요. 연간 합계출산율이 0.7명이면 정말 심각한 상황인데, 저출산을 걱정한다면서 기초의학 R&D를 지원하지 않는 건 아이러니죠.”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