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전문가 추천 받아 15∼20명 1차 압축 후 5명 최종 후보자 명단에
1년여 전과정 철통보안…심사위원 18명, 3개월간 작품 읽고 토론 뒤 10월초 투표
라이벌 면면 등 심사 내용 일체는 규정 따라 50년간 ‘봉인’ 깜깜이
작가 한강의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이 많은 사람에게 ‘예기치 못한 기쁨’이 된 이유 중 하나는 노벨위원회의 철저한 ‘비밀 심사’ 원칙 덕분이기도 하다.
한강이 언어 장벽을 뛰어넘고 역대 수상자들보다 50대의 젊은 나이로 ‘첫 아시아 여성 작가’ 수상자 기록을 세우며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신드롬을 이어가면서 노벨 문학상의 선정 절차 및 과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1년여 과정을 거친 철저한 심사 과정을 거쳐 선정된다. 전체 심사 과정은 비공개로 이뤄지며 수상자가 발표된 이후에도 후보자 심사 등 관련 정보 일체는 50년간 봉인된다.
14일 노벨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수상자 선정 절차는 시상 해의 전년도 9월부터 일찌감치 시작된다. 노벨 문학 분과위원회(the Nobel Committee for Literature)가 수상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서한을 전 세계 전문가 수백 명에게 발송하는 것으로 스타트를 끊는다. 위원회는 후보작 평가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4∼5명 규모의 실무 기구다.
후보 추천자의 자격은 한림원 소속 회원들과 그와 비슷한 목적의 학술기관·협회의 회원, 대학교의 문학·언어학 교수들에게 주어진다.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각국의 대표적인 작가협회에도 후보 추천 자격을 부여한다.
후보 추천 요청을 받은 전문가들은 시상 연도의 1월 31일까지 답신을 보내야 한다. 노벨 문학 분과위원회는 추천받은 후보자들 명단을 검토한 뒤 심사를 관장하는 한림원에 보내 승인을 받는다.
올해 노벨 문학상에는 총 200명이 넘는 후보자가 추천돼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위원회는 13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을 통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한강에게 수상하기로 결정하기 전까지 220명의 후보자 목록을 갖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고 소개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전체 후보자 가운데 추가 심사를 거쳐 4월에는 후보군이 15∼20명으로 추려진다. 노벨 문학 분과위원회는 이어 5월에는 이 중 5명을 다시 압축해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한다.
심사의 ‘본게임’은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18명으로 이뤄진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이들 5명의 작품을 직접 읽고 평가하는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위원들은 6∼8월 작품들을 읽고 9월에 모여 각 후보의 문학적 기여 등에 관해 토론한다. 여기에서 논의된 견해 등을 토대로 10월 초 투표를 거쳐 과반 가결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노벨위원회의 정해진 절차에 따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도 이 시간표에 진행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강이 1차로 15∼20명의 예비 압축 절차를 거쳐 ‘본선’에서 나머지 4명의 쟁쟁한 후보들과 겨룬 끝에 과반의 표를 얻어냈다는 얘기다.
노벨위원회는 홈페이지에 구체적인 심사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자격 있는 추천인의 추천이 필요하며 자가 추천은 안 된다는 최소한의 원칙만 밝히고 있다.
아울러 노벨위원회는 “노벨 재단의 규정에 따라 후보자에 대한 정보는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50년간 공개하지 말도록 제한한다”며 이 제한 규정은 후보자들 및 후보 추천·지명자들, 수상과 관련한 심사·의견 등 모두에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강 작가와 함께 어떤 이들이 최종 후보자 명단에 올라 겨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앞으로 반세기 동안 ‘깜깜이’ 상태로 비밀에 부쳐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철통보안 속에서 심사가 이뤄지면서 매해 노벨상 시즌이 되면 수상자를 둘러싼 무성한 관측이 나온다.
올해에도 온라인 베팅사이트 등에서 호주 소설가 제럴드 머네인, 중국 작가 찬쉐, 카리브해 영연방 국가 출신 자메이카 킨케이드, 캐나다 시인 앤 카슨 등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점쳐졌다.
하지만 지난 10일 노벨위원회는 이런 예측을 모두 뒤엎고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했다.
다만 발표 전 예상 중 여성 수상자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은 적중했다.
한림원은 2012년 이후 거의 예외 없이 매년 남녀를 번갈아 수상자로 선정했으며, 올해도 그 관행이 지켜지면서다.
2022년에는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가, 지난해에는 노르웨이 남성 작가 욘 포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노벨위원회의 비밀주의 원칙에도 과거에 수상자 이름이 사전에 유출돼 논란이 된 적도 있다.
한림원은 2018년 수상자 명단이 미리 외부에 흘러 나간 의혹과 ‘미투'(나도 고발한다) 관련 폭로로 위원들이 잇따라 사퇴하는 등 파문이 일자 그 해 발표를 취소하고, 이듬해 2018년·2019년 수상자를 동시에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