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영 대한비만학회 이사장 인터뷰
WHO 기준 적용한 국내 BMI 기준 안 맞아
비만 따른 사회적 비용 연간 15조 원 이상
“‘비만병’으로 바라보고 적극 치료 나서야”
“우리나라 건강검진은 체질량지수(BMI) 25~30 사이를 과체중으로 분류하지만 절대 안심할 단계가 아니에요. 건강검진에서 BMI가 25를 넘겼다면 비만으로 보고 적극 관리에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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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영 대한비만학회 이사장(강북삼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은 “비만을 특정 증상이 아니라 ‘병’으로 봐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달 2일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비만은 만성질환”이라며 “비만 판단의 기준이 되는 BMI를 한국인 특성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BMI는 키와 체중을 이용해 비만 정도를 계산한 지수다. 한국에선 BMI가 25 이상 30 미만이면 과체중, 30 이상 35 미만이면 1단계 비만, 35 이상 40 미만이면 2단계 비만, 40 이상이면 3단계 비만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이어서 의료계에선 한국인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해왔다. 박 이사장은 “미국에서도 동양인은 BMI 25부터 비만으로 보고 관리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국민건강검진의 목적은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인데 인종적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해외 기준을 도입하다 보니 BMI가 25 이상 30 미만이면 과체중으로 구분돼요. 막대한 세금을 들여 국민건강검진을 해놓고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난 비만이 아니야’ 하며 비만을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강을 개선할 시기를 놓치게 되는 셈이죠.” 별도의 비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자국민에 맞춘 BMI 기준에 따라 진료하는 중국과 정반대 상황이다. 대한비만학회는 BMI가 23 이상 25 미만이면 과체중, 25 이상 30 미만은 1단계 비만, 30 이상 35 미만은 2단계 미만, 35 이상이면 3단계 비만으로 구분한다.
체중을 바로잡을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이, 비만은 수많은 질환을 몰고 온다. 비만도가 높아지면 고혈압을 앓게 될 확률이 2.5~4배 커지고, 과도한 지방축적은 심부전을 초래한다. 남아도는 열량이 중성지방 형태로 간에 저장되면서 간 기능이 나빠지고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허리‧무릎 관절에 계속 부담을 주기 때문에 관절염을 앓기도 쉽다. 암과 하지정맥류, 수면무호흡증, 제2형 당뇨병, 우울증 등도 유발한다.
그로 인해 한국 사회가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15조6,382억 원(2021년 기준)에 달한다. 대표적인 건강위험요인으로 꼽히는 음주(14조6,274억 원)와 흡연의 사회적 비용(11조4,206억 원)마저 넘어섰다. 비만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 중 비만이 차지하는 비율은 54.9%, 과체중 25.6%, 고도비만 19.5%로 나타났으나, 최근 5년 평균 증가율은 고도비만(9.7%)이 과체중‧비만보다 두 배 안팎 높다.
박 이사장은 “비만도가 높아지면 고혈압과 당뇨병 등을 앓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고혈압‧당뇨병은 큰일처럼 여기면서 비만은 한국 사회가 굉장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어요. 그리고 이런 만성질환을 약물 중심으로 치료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만성질환에 대한 치료 행태가 잘못됐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고혈압‧당뇨병 등은 체중이 줄면 건강이 개선되는 게 너무도 명확한데도 한국에선 약물로 관리를 해요. 약을 쓰고 약효가 떨어지면 증량하거나 다른 약으로 바꾸는 식이죠. 만성질환 환자는 체중조절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지만 외래진료를 짧게 보다 보니 환자를 제대로 살필 수가 없고, 건강보험으로 비용도 지원되니까 이렇게 진료를 보는 겁니다. 근본적인 문제(체중)는 놔두고 약만 쓰니까 치료가 제대로 될 리가 없죠.”
비만을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도 비만 치료를 가로막는 원인으로 꼽았다. “비만은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인 탓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에요. 각종 환경적‧유전적 원인도 작용하기 때문에 비만인 사람이 게을러서 생긴 문제로 치부해버리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렵게 됩니다.” 잘못된 약을 쓰거나, 단기간에 무리해 살을 빼려다가 오히려 체질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단 얘기다. 다이어트 특효약의 경우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와 변비약, 이뇨제 등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약을 먹은 후 체중이 줄더라도 대부분 근육과 수분이 빠진 것이어서 실제 건강이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약을 중단하면 그간 억눌러 온 식욕이 폭발하면서 폭식을 하게 될 공산도 크다.
급격한 체중감량은 요요현상을 불러오고, 이후엔 살을 빼기 힘든 몸으로 체구성이 바뀌게 된다. “체중이 100㎏인 사람이 급격히 살을 빼 70㎏이 되더라도 관리를 꾸준히 하지 않으면 금세 다시 100㎏이 됩니다. 이땐 이전 100㎏ 때와 전혀 다른 몸이 돼요. 근육은 더 줄고 체지방은 더 많이 늘게 되는 거죠. 무리한 체중감량과 잘못된 약 사용으로 체중을 급격히 빼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건강은 점점 악화하는 겁니다.”
박 이사장은 “생활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비만을 바로잡기 힘들다”며 “이를 위해선 ‘적게 먹는다’는 인식부터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적게 먹는다고 하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잖아요. 손해 보는 생각이 들면 어디선가 보상을 찾게 돼 있어요. 건강하게 먹는다고 생각을 해야지, 적게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체중감량이 실패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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