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작가로는 최초로 한강 소설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평생의 과업에 수여하는’ 노벨상 50대 수상 이례적
‘실험적이고 시적인 접근’ 높이 사···황석영 등 기존 작가와 달라
내면 집중하는 세계 문단 흐름 읽어낸 효시..K문학 길 열어
5·18등 역사적 트라우마 직시···부드럽지만 정확한 산문으로 녹여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등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국제적으로 강렬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10일(현지 시간) 스웨덴 왕립 과학 한림원 노벨위원회는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국내 소설가인 한강(54·사진)을 호명하며 선정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가장 한국적인 사건들을 자신만의 시적 문장으로 담아낸 한강만의 스타일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겨줬다. 특히 한 작가의 평생에 걸친 작품 세계에 헌정하는 의미를 가진 노벨문학상 수상을 50대에 이뤄낸 경우는 흔치 않다. 오르한 파묵, 토마스 만이 54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날 수상자 발표에 나선 마츠 말름 한림원 사무총장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의 반열에 오른 국제적인 도약의 순간으로 소설 ‘채식주의자(Vegeterian, 2007년 출간)’를 꼽았다. 그는 “주인공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면서 겪는 폭력적인 결과를 가혹할 정도로 효과적이면서도 시적으로 묘사했다”며 “‘소년이 온다(2014)’에서는 자신이 성장한 도시인 광주광역시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삼아 한강만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증언 문학으로 충격으로 다가갔다”고 평했다.
선정 사유를 밝히며 10여 분간 이어진 작가 한강 소개에서 ‘실험적이고 시적인 접근’이라는 단어가 수차례 언급됐는데 이는 세계 문단이 이해하는 한강의 작품 세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역사적인 트라우마와 개인의 트라우마와의 연결 고리를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확보해내는 능력이 황석영 작가 등 기존 문단의 거장과 달랐던 점이 세계 문단에서 한강을 높이 평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노벨위원회의 한 심사위원은 “한강은 역사적 장소와 사건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활용해 산 자와 죽은 자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트라우마가 한 세대를 넘어 어떻게 대대로 남게 되는지 보여준다”며 “한강의 매우 부드럽지만 정확한 산문이 폭력의 잔인한 힘에 대응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고 평했다.
한강은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로 데뷔하기 전 시로 먼저 등단한 이력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시심(詩心)에서 비롯된 단아하고 정갈함을 지닌 문체로 이를 담아내는 한강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형성했다.
한강은 등단 초기부터 ‘한 인간이 폭력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일관되게 던지며 국내 문단에서도 주목받았다. 초창기에는 상처 입은 개인의 문제에 집중하며 ‘여수의 사랑(1995년)’ ‘검은 사슴(1998년)’ 등에서 불행한 가족사나 트라우마로 인한 개인적인 상처를 다뤘다. 이를 집대성하는 작품이 ‘채식주의자(2007년)’로 격렬한 꿈에 시달리다 육식을 거부하면서 스스로 나무가 되어간다고 믿는 여성 ‘영혜’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서사를 선보였다. 특히 이 소설은 평단에서 “상처받은 영혼의 고통과 식물적인 상상력이 결합해 섬뜩할 만큼 강렬한 아름다움을 뿜어낸다”는 평을 받았다. 국내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한강의 입지를 다시 확인한 동시에 해외에 소설가 한강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이번 한강의 수상은 한국 문학이 세계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쌓인 결과물로 한강이 한국 문학의 세계로 향하는 물줄기의 원류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K문학의 번역 전문가인 이형진 숙명여대 영문학부 교수는 “세계 문단에서 다양한 형태의 소외된 약자들의 내면의 이야기들이 큰 공감을 얻어내고 있는 흐름을 읽고 이 같은 작품 세계를 훌륭히 구축한 한강이 국내 작가 중에는 효시가 됐다”며 “한강을 시작으로 한국 문학이 세계 독자들과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쌓인 공감대의 역사적인 결과물”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특히 강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던 다른 아시아 작가들과 다르게 번역된 언어가 영어·프랑스어·이탈리어 등 몇 곳 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벽을 넘은 파격”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이 수상 연락을 받을 당시 아들과 저녁 식사를 마쳤으며 수상 소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스웨덴 한림원 관계자가 전했다.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말름 사무총장은 노벨상 수상자 발표 이후 “한강과 전화로 얘기할 수 있었다”며 “그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들과 막 저녁식사를 마친 참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