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허사비스, 수석과학자 점퍼 수상…AI의 순수과학 기여 인정
“곧 노벨상” 기대받던 컴퓨팅생물학자 베이커도 수상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9일(현지시간)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로 발표한 3명의 면면에는 순수 자연과학보다는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쌓아온 명성이 두드러진다.
신약 개발과 질병퇴치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잠재력을 지닌 단백질 구조 연구가 이들이 영예를 누리게 된 이유인데, 이런 획기적 연구의 원동력은 AI와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의 탁월한 전문 역량에서 나왔다.
공동 수상자 가운데 2명의 이력에 생성형 AI 선두 주자인 구글 딥마인드가 등장하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데미스 허사비스(48)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39) 수석 연구과학자는 사실 학계보다 IT업계에 더 잘 알려졌을 정도다. 그간 노벨화학상 수상자와 업적과 비교했을 때 이들의 수상이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976년 영국 런던 출생인 허사비스는 13세 때 국제 체스연맹에서 ‘마스터’ 인증을 받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통하던 과학자다. 키프로스 그리스계 부친과 중국계 싱가포르인 어머니를 뒀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컴퓨터 과학 학위를 얻고 게임 개발자로 일했던 그는 2009년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인간의 뇌 구조를 이용해 AI의 학습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데 주력했다.
그가 2010년 공동설립한 AI 연구소 딥마인드는 2014년 구글에 인수됐고 이후 2016년 이세돌 9단과 바둑 대결을 펼친 알파고와 그 상위 버전인 알파제로 등의 프로젝트로 구글 딥마인드는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허사비스의 관심사는 단백질 구조를 파악하는 AI 모델 알파폴드를 개발하는 영역으로 확장했다.
단백질 구조를 정확하게 밝혀내면 세포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질병 메커니즘을 파악하면서 항암제를 비롯한 신약 개발을 가속할 수 있으며 유전자 변이 예측이나 바이오 연료 생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연구 주제다.
구글 딥마인드의 단백질 구조 분석 AI 모델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에 관해 접근할 수 있는 구글 검색엔진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평가된다.
허사비스와 함께 알파폴드를 개발한 점퍼도 영국 출생이다.
미국 시카고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했고 UC 버클리에서 생물물리학·계산화학 박사학위를 땄다.
이런 학문적 배경은 그가 AI와 머신러닝을 통해서 복잡한 단백질 구조를 탐구하고 예측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점퍼가 딥마인드에 합류하면서 알파폴드 개발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알파폴드는 기존 구조 예측 방법들을 월등하게 뛰어넘는 정확도를 자랑한다고 평가된다. 노벨위원회는 단백질 구조 연구에서 알파폴드가 이뤄낸 성과를 “완전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순수과학에 대한 AI의 기여를 인정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했다는 뜻이다.
허사비스와 점퍼는 지난달 타임지가 선정한 ‘AI를 이끌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들과 함께 공동수상자가 된 데이비드 베이커(62)는 미국의 저명한 생화학자다. 그를 학계에 더욱 알린 건 컴퓨팅생물학(계산생물학) 분야에서 쌓은 연구 성과 때문이다.
워싱턴대 교수이자 하워드 휴스 의학연구소 연구원인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그의 연구가 단백질 규명과 인공 단백질 설계까지 가능하게 한 데에는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쌓은 고도의 전문성이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이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발표하면서 학계에선 “곧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고 마침내 이날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