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치매 주요원인은 ‘신체활동 부족’…”외부활동 늘리고, 고혈압·당뇨병 관리해야”
매년 9월 21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알츠하이머병협회(ADI)가 공동 제정한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World Alzheimer’s Day)이다. 또 이날은 치매 극복을 위해 정부가 제정한 ‘치매 극복의 날’이기도 하다.
대한치매학회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 65세 이상 인구의 치매 유병률은 약 11%다. 65세 이상 9명 중 1명은 치매라는 얘기다. 일부 연구에서는 80대 중반 이상의 절반 정도는 치매 진단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치매센터는 지난 6월 발표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23’에서 올해 국내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 수가 105만명으로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추정 치매 환자는 숨겨진 숫자까지 추계한 개념이다.
치매 환자는 초고령화 추세에 따라 2030년 142만명, 2040년 226만명, 2050년 315만명, 2060년 340만명, 2070년 334만명으로 급증이 전망된다는 게 센터의 분석이다.
치매는 다양한 원인으로 뇌 기능이 손상되면서 기억력과 인지 기능이 갈수록 떨어져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질환을 통칭한다.
가장 흔한 치매는 전체의 약 60∼8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이다. 나이가 들수록 발병 위험이 커지며, 노인성 치매의 대표적 원인 질환이다. 전화번호나 사람 이름을 잊어버리는 등의 기억장애와 말하기·읽기·쓰기 등에 문제가 생기는 언어장애, 방향감각이 떨어지는 시공간 능력 저하 등이 첫 증상으로 꼽힌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는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독성을 가진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 속에 과도하게 쌓인 후 뇌세포의 골격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타우 단백질의 이상이 겹치면서 신경세포가 파괴되고 인지기능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고혈압, 동맥경화 등의 뇌혈관 손상이 원인인 ‘혈관성 치매’가 전체의 약 15%를 차지한다.
치매는 현재 마땅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게 최선이다.
특히 치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의 경우 증상의 진행 속도를 늦춰주는 치료 외에 증상의 진행을 멈추거나 증상을 호전시켜주는 치료법이 없어 병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정이 불가능한 요인(노화, 성별, 치매 위험 유전자, 대기오염 등)보다 교정이 가능한 요인(신체활동, 고혈압, 당뇨병, 우울증 등) 위주로 개선하는 게 효과적인 전략이다.
또 혈관성 치매도 그 원인이 되는 고혈압, 동맥경화, 당뇨병 등 만성 성인병을 철저히 치료하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특히 과도한 음주와 흡연은 치매를 유발하는 요인인 만큼 될 수 있으면 삼가는 게 좋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이 치매 병력이 없었던 79만4천448명을 10여년 동안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는 한국인의 치매 발병에 관여하는 주요 요인으로 신체활동 부족(8.1%), 당뇨병(4.2%), 고혈압(2.9%), 우울증(2.4%) 등이 꼽혔다.
이런 연구 결과는 활발한 신체활동이 인지 장애를 줄여주고 치매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국내외의 여러 연구를 뒷받침한다.
유산소 운동을 포함한 규칙적인 신체활동이 치매를 부르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조절하고, 염증을 줄이며, 대뇌 혈류를 개선함으로써 인지 기능에 도움이 된다는 게 주요 메커니즘이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송인욱 교수는 “치매를 예방하려면 수면, 식생활을 포함한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혼자 지내는 시간을 줄이고 외부와 어울릴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때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치매를 유발할 수 있는 위험 요인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노력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평소 단백질을 많이 먹으면 알츠하이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병 연구 및 치료'(Alzheimer’s Research & therapy) 최근호에 따르면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김지욱·금무성·서국희·최영민), 진단검사의학과(김현수) 공동 연구팀은 치매가 없는 65~90세 196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런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연구 참여자 중 113명은 인지기능이 정상이었고, 83명은 경도인지장애가 있었다.
연구팀은 3개월간의 단백질 섭취량을 분석해 알츠하이머병 관련 인지 저하 및 삽화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다. 단백질 섭취는 유제품(우유, 치즈, 요거트), 콩류, 계란, 육류, 생선, 가금류 섭취량을 바탕으로 낮음, 중간, 높음으로 분류했다.
‘삽화기억’이란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이 시간과 공간의 맥락에서 기억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집 열쇠를 언제 어디에 두었는지를 기억하는 식이다.
이 결과 단백질 섭취량이 많은 그룹의 평균 인지기능 점수는 83점으로, 단백질 섭취량이 적은 그룹의 67점보다 24% 높았다.
특히 삽화기억 점수는 단백질 섭취량이 많은 그룹이 43점으로 단백질 섭취량이 적은 그룹의 34점보다 27% 높았다. 다른 변수들을 보정한 경우에도 단백질 섭취량이 많은 그룹이 단백질 섭취량이 적은 그룹에 견줘 전체 인지기능과 삽화기억이 약 20% 더 높았다.
다만, 비기억성 인지기능(언어능력, 집행기능, 시공간능력, 주의력)에서는 각 그룹 간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또 이번 연구에서 단백질 섭취량과 알츠하이머병 유전자인 ‘아포지단백 E4′(이하 APOE4) 사이에 유의미한 상호작용도 발견했다. 단백질과 인체 대사활동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끼치는 APOE4 유전자가 삽화기억 간의 관계도 조절한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금무성 교수는 “APOE4 유전자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단백질 섭취량이 많은 그룹의 인지기능과 삽화기억이 단백질 섭취량이 적은 그룹보다 약 40% 더 높았다”면서 “이는 알츠하이머병의 유전적인 소인이 있는 경우 단백질 섭취가 인지기능 유지에 매우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노년기 알츠하이머병 예방을 위해서는 평소 단백질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고 연구팀은 권고했다.
김지욱 교수는 “충분한 단백질 섭취는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신경가소성(뇌가 스스로 신경회로를 바꾸는 능력)을 촉진하고, 인지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영양인자의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알츠하이머병 인지 저하에 직접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APOE4 유전자의 지질 대사 및 아밀로이드 베타 침착 기전과 상호작용해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