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700개 땅굴이 ‘생명줄’…”무기 제조 등 사실상 군 산업단지”
“이스라엘군도 전체 땅굴 파괴하기엔 역부족 판단”
가자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됐지만,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공습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다.
하마스가 세종시와 비슷한 365㎢ 면적의 가자지구에서 장기간 지속적인 공격을 받고 있지만 건재한 것은 가자지구 지하를 관통하는 ‘땅굴’ 덕분으로 평가된다.
5천7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땅굴이 고립된 하마스에 ‘생명줄’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5일(현지시간) 전현직 하마스 당국자와 이스라엘군, 미군, 정보 분석가 등 20여명을 인터뷰해 하마스 땅굴의 실태를 조명했다.
WP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고립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하고 오랜 기간 전쟁을 준비해왔다.
지하를 관통하는 땅굴은 자체적으로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과 요새로 탈바꿈시켰다.
외부의 승인 없이도 수천 명이 투입되는 정교한 작전을 비밀리에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웠다.
가자지구의 하마스 정치국 위원 중 한 명인 가지 하마드는 WP에 “우리는 어느 날 공급 채널이 모두 닫히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조공장을 지하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우리는 밤낮으로 24시간 일했다”며 “단순히 향후 1∼2년간만을 준비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대비했다”고 했다.
이런 땅굴의 실체는 전쟁 발발 이후 가자지구에 투입된 이스라엘군에 의해 드러나기 시작했다.
많은 전문가는 하마스가 이란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란산 로켓과 미사일을 대량 밀수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지상전에 나선 이스라엘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란산은 거의 없었다.
대신 농업용 화학물질과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파이프 등으로 폭발물을 만들 수 있는 소규모 작업장이 발견됐고 최대 80%가량이 직접 제조한 무기로 파악됐다.
하마스는 이곳에서 대전차용 급조폭발물(IED)과 열압력 로켓 추진 수류탄, 중·단거리 로켓 등을 직접 생산했다고 WP는 전했다.
일부 무기에는 하마스라는 브랜드가 새겨져 있기도 했다.
설탕과 질산칼륨 비료를 채워 만든 ‘카삼'(Qassam)이라는 로켓은 만드는데 수백달러밖에 들지 않지만, 이스라엘군이 이를 격추하는데 들어간 돈은 1발당 5만달러(약 6천700만원)에 달했다.
10년 이상 하마스와 땅굴을 연구해온 미 재무부의 대테러 당국자 매슈 레빗은 하마스가 저렴한 무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사실상의 군 산업단지를 건설한 것으로 평가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땅굴은 통신망, 보급창고, 방공호, 야전병원 등의 역할도 했다.
길이도 300마일(약 482km) 이상으로 추정되며 이스라엘군도 사실상 전체 땅굴 시스템을 파괴할 방안은 없다고 보고 있다.
WP는 땅굴이 하마스 1인자인 야히야 신와르에게는 생존을 위한 열쇠라고 짚었다.
WP가 인터뷰한 하마스 당국자에 따르면 신와르는 이런 땅굴을 활용해 지난 1년간 전쟁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하마스 재건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1년간 이어진 전쟁에 수많은 조직원을 잃고 현금과 무기 비축량도 줄어들었지만, 땅굴에서 버티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WP는 다만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막히면서 하마스의 자금줄이 마르고 있고 필수 물자도 부족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마스는 비축해둔 현금을 전투원과 공공부문 근로자 등에 대한 급여로 지급해왔는데 올봄부터는 정상 급여의 절반밖에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적어도 필수 자원과 자금 측면에 있어서는 ‘한계점’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