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제안 한달 지났지만 의료계 ‘침묵’… ‘2025년 정원 논의’ 당정 온도차
의협회장 불신임 분위기 ‘확산’…전공의 대표 “어떤 협상테이블도 같이 안 앉아”
정부는 ’30조원 투입해 상종병원 구조전환’ 개혁안… “의대증원 포함 개혁 필수”
의료공백 사태 해결을 위해 여권이 추진해온 정부와 의료계, 정치권 간 대화가 의료계의 불참으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에 나서며 의료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연관기사] 尹-한동훈 다음 주 회동, ‘의료대란’ 해법 갈린다
의료계는 이미 2025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이 끝나는 등 내년도 의대 정원이 확정된 단계인데도 내년 의대 정원부터 백지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의료계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임현택 회장에 대한 불신 분위기가 확산하며 리더십 위기마저 겪고 있어 대화를 통한 의료공백 해소 가능성은 더 희박해지고 있다.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여부 알려달라’ 제안에 응답 안 한 의료계
29일(이하 한국시간)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6일 2026년도 의대 증원을 유예하자며 의료계에 대화를 촉구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의료계는 ‘2025년도 증원 백지화’ 주장을 굽히지 않은 채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 대표가 정부와 여야 정치권, 의료계가 나서는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의대 증원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하며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의료계는 국민의힘이 협의체 참여 여부를 알려달라고 한 27일까지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의료계가 협의체 참여에 부정적인 것은 2025년도 의대정원부터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의협의 최안나 대변인은 “정부의 입장 변화가 있어야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고, 이진우 대한의학회 회장은 “정부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창수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회장은 “(여야의정협의체에) 들어간다고 해도 할 이야기가 없다. 정부가 (입장이) 여전해서 아쉽다”고 밝혔다.
의료현장 이탈의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참여에 부정적인 것은 협의체 출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전공의들의 참여 없이는 협의체가 결론을 낸다고 해도 의료 정상화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공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은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거짓과 날조 위에 신뢰를 쌓을 수는 없다’고 한 대표를 저격한 뒤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는 한 대표가 자신과 줄곧 소통해오고 읍소 수준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는 국민의힘 관계자의 인터뷰 기사를 링크하며 “한동훈 대표는 지속적으로 만남을 거절했다. 읍소는커녕, 단 한 번 비공개 만남 이후 대전협은 한동훈 대표와 소통한 적 없다”고 적었다.
2025년도 정원을 협의체에서 논의할지에 대한 정부와 여당 사이 입장차도 뚜렷하다.
한 대표는 2025년 정원 문제도 협의체의 의제로 포함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와 대통령실은 2025년 증원 조정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이다.
전공의 ‘비토’에 내부선 탄핵 목소리… ‘투쟁’ 카드 떨어진 의협
이런 가운데 의료계 대표단체인 의협은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어 의료계가 한목소리로 대화에 나서기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의협의 일부 대의원이 지난 27일까지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 회장 불신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대부분은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중간집계에서 투표자의 77%가량이 불신임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최종 결과에서는 이런 비율이 더 높아졌다.
불신임에 찬성한 회원 수가 불신임안 발의 조건인 ‘전체 선거권 회원의 4분의 1에는 못 미쳐서 바로 탄핵안이 발의될 수는 없지만, 이번 설문 결과를 계기로 향후 대의원회 등에서 불신임 움직임이 거세질 수 있다. 불신임안 발의는 재적 대의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로도 가능하다.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 분위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기도의사회가 현 의협 집행부가 의정 갈등 상황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면서 임 회장에 대한 불신임을 주장해왔고,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 역시 여러 차례 임 회장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박 위원장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임 회장은 사직한 전공의와 휴학한 의대생을 대표하지 않는다. 임 회장과 어떤 협상 테이블에도 같이 앉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는 임 회장과 관련해 “그만두지 않으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의료계는 더한 강경 투쟁도, 정부와의 대화도 쉽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쳐있다.
의료계 내에서는 의정 갈등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정부를 향해 쓸만한 ‘투쟁’ 카드가 남아있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전공의와 의대생의 이탈 이후 이미 의대 교수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집단 휴진을 해 강경 카드는 대부분 사용한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대화를 하자는 목소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수시 접수까지 끝나 2025년도 정원을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2026년도 정원을 놓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지만, 의사 블랙리스트 등으로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이런 대화론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부는 10조원 투입해 상종병원 ‘개혁’ 나서… “가던 길 갈 것”
대화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는 흔들림 없이 의료개혁에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드러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 2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의료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의료개혁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27일에는 3년간 30조원을 투입해 상급종합병원의 구조전환하겠다는 개혁안을 발표하며 의료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기도 했다.
상급종합병원의 중증진료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고 일반병상은 최대 15% 줄이면서 중증 수술이나 중환자실 입원료 수가(의료행위 대가) 등은 50% 높여 중증환자 치료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시작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사태 후 대부분 상급종합병원인 수련 병원의 과도한 전공의 의존에 대한 문제점과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환자 치료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상급종합병원에 대한 구조전환을 추진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와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의료개혁이라는 가던 길을 계속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경실 의료개혁추진단장은 지난 27일 브리핑에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와 의대 증원 등을 포함한 의료개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지역과 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현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의료개혁을 완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