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열렬한 환대와 달리 대선 국면 美의회에서도 냉대

‘러에 서방 장거리 무기 사용’ 요구도 별무소득…빈손 귀국

2년 8개월째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기 위한 ‘승리계획’을 들고 미국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한 모양새다.

미국 차기 대선까지 40일도 남지 않은 예민한 국면인데다 신중치 못한 처신으로 특정 후보 편을 든다는 논란에 휘말리기까지 한 것이 영향을 미친 듯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27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도록 압박하기 위해 동맹들에게서 더 많은 지원을 끌어낼 기회로 기획된 젤렌스키의 방미가 도널드 트럼프의 무대포식 정치전술에 낭비됐다”고 평가했다.

당초 젤렌스키는 뉴욕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러시아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전쟁 지속 의지를 꺾는다는 목표를 지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방미는 시작부터 논란을 불렀다.

지난달 22일 첫 방문지로 러시아와의 전쟁을 지속하는데 가장 중요한 물자인 155㎜ 포탄을 생산하는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을 방문한 것이 문제였다.

펜실베이니아주는 11월 5일로 예정된 미국 차기 대선 결과를 결정지을 핵심 경합주 중 하나로, 공화당 대선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초박빙 접전이 진행 중인 지역이다.

해리스의 측근으로 꼽히는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등과 함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향인 스크랜턴을 찾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행보에 공화당은 격하게 반발했다.

친(親)트럼프 인사로 꼽히는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스크랜턴 방문을 ‘대선 개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방미 시점에 맞춰 보도된 뉴요커지와의 인터뷰에서도 트럼프와 러닝메이트인 공화당 J.D. 밴스 상원의원에 대해 외교적이지 못한 비판을 쏟아낸 것도 적절치 못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지적했다.

젤렌스키는 이 매체에 “트럼프는 전쟁을 어떻게 멈출지 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고 밴스 의원에 대해서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그는 선거유세 연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억양을 조롱하면서 “(젤렌스키가) 여러분이 좋아하는 대통령인 내게 작고 못된 비방을 가했다”고 말했고, 보좌진들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회동이 불발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블룸버그는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격렬한 반응에 당황했다”면서 “결국 27일 접견이 허락됐지만 그건 며칠 동안이나 (젤렌스키에 대한) 공개적 폄하가 이어진 뒤였다”고 전했다.

이날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트럼프와 회동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자신이 재선되면 전쟁을 신속히 끝낼 것이란 입장을 재확인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길 원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우크라이나를 파괴된 불모지로 묘사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이 끼어들어 우크라이나 방문 초청을 하는 등 어색한 순간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트럼프는 이날 회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없다”(nothing)고 답한데 이어 자신이 권좌에 있지 않은 까닭에 이번 만남은 ‘보여주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하루 전인 26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동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를 대폭 늘리겠다고 확약했지만, 젤렌스키의 ‘승리 계획’과 관련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측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서방제 무기를 이용한 러시아 본토 공격 허용 역시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같은날 미 의회 의사당을 찾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것과 달리 주요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다 휴회까지 겹치면서 만날 수 있었던 상·하원 의원이 30여명에 그쳐 워싱턴 정가의 달라진 공기를 실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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