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파트너’ 인기로 본 이혼 드라마의 변화]
막장 보여주기→’이혼 잘하는 법’ 알려주기

‘장 대리, 이따가 근처에서 ㅅㅅ(섹스) 할래요?’

‘지난번처럼 깜빡하지 마시고 ㅋㄷ(콘돔) 챙겨 오세요.’

법정 스크린에 이런 내용의 카카오톡 대화 캡처 사진이 큼지막하게 떴다. 이혼 소송을 낸 아내가 법원에 제출한 남편 불륜의 증거다. 문자 속 장 대리는 피고의 직장 부하 직원. 누가 봐도 사내 불륜 커플의 대화지만, 피고는 성 관련 대화가 아니라고 딱 잡아뗐다. ㅅㅅ은 ‘석식’이고 ㅋㄷ은 ‘카드(법인)’라며 화를 냈다. SBS 드라마 ‘굿파트너’에서 다룬 에피소드다.

27일 드라마 제작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장면은 ‘굿파트너’ 작가가 실제 경험을 토대로 썼다. 작가는 이혼 전문 변호사 최유나. 올해 13년째 변호사로 일하는 그가 맡았던 이혼 사건 중 불륜 증거로 제출된 카톡 대화 속 ‘ㅅㄹㅎ(사랑해)’를 피고가 ‘싫어해’라고 주장해 목덜미를 잡은 일을 각색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가 쓴 이혼 법정 드라마는 어떻게 기획됐을까. 시작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 변호사는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웹툰 ‘메리지 레드’를 연재했다. ‘결혼 생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뜻이 담긴 제목처럼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들의 사연을 다룬 콘텐츠였다. 이 인스타툰을 재미있게 본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앤뉴의 기획 PD는 최 변호사에게 드라마 집필을 제안했다. 그는 낮엔 변호사로 일하고 밤엔 퇴근해 집에서 두 아이를 재운 뒤 글을 썼다. 그렇게 대본 탈고에 꼬박 5년이 걸렸다. ‘굿파트너’를 기획한 스튜디오앤뉴는 업계에서 “법조인 드라마 작가 데뷔 양성소”로 불린다. 2018년 당시 현직에 있던 문유석 부장판사의 드라마 작가 데뷔작 ‘미스 함무라비’도 이 제작사가 만들었다.

이렇게 나온 ‘굿파트너’의 인기가 뜨겁다. 지난달 12일 첫 방송에서 7.8%로 시작한 시청률은 최신 회차인 이달 24일 방송에서 17.2%로 2배 이상 뛰었다. 이 추세라면 16회 종방 전까지 시청률 20%를 돌파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애초 방송가의 기대작은 아니었다. 작가가 신인인 데다 이혼 소재 법정 드라마는 그간 크게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1~2년 새 방송된 JTBC ‘신성한, 이혼’, ENA ‘남이 될 수 있을까’ 모두 시청률이 한 자릿수였다.

‘굿파트너’의 예상 밖 흥행은 과거 이혼 드라마들과의 차별화로 가능했다. 색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 ①’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1999~2014)이 부부관계가 파탄 난 ‘막장 상황’을 보여주는 데 치중했다면, ‘굿파트너’는 ‘어떻게 이혼을 잘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극에서 남편의 외도로 이혼 절차를 밟은 아내는 위자료를 받고 두 아이 양육권을 포기했다. “두 아이 모두 영어 유치원 보내고 명품 입히면서 키웠는데 날(엄마) 따라오면 그렇게 못 큰다”는 게 이유. ‘굿파트너’는 돈 때문에 아이를 버린 매정한 엄마로 매도하지 않는다. 이 사건을 맡은 드라마 주인공인 17년 차 이혼 전문 변호사 차은경(장나라)을 통해 불륜 커플이 각자의 아이를 데려다 함께 살기 어려운 현실 등을 알려주며 새로운 대응 방법을 보여준다. “양육권을 뺏긴 게 아니라 잠시 맡긴 것”이란 식의 환기다. 차은경의 로펌 후배 한유리 변호사 역을 맡아 이 장면을 촬영한 남지현은 “대본을 읽을 때 뒤통수를 얻어맞는 기분이었다”며 “작가님이 이혼 전문 변호사가 아니었으면 쓰지 못했을 이야기“라고 말했다. 고민 해결, 즉 솔루션 프로그램 포맷을 받아들인 법정 드라마가 이혼 소재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는 “‘굿파트너’는 ‘이 부부는 왜 이혼을 하는가’를 ‘사랑과 전쟁’처럼 회마다 보여주면서도 주인공인 두 변호사가 짝을 이뤄 해결사로 활약하는 미국 드라마 ‘수트’식 전개로 이혼 법정 드라마의 묘미와 쾌감을 끌어올렸다”고 봤다.

②일 처리에서 결과를 중요시하는 선배 장나라와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후배 남지현, 기성 세대와 청년 세대의 직장 갈등과 성장을 여성판 ‘미생’처럼 보여준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SBS를 통해 ‘굿파트너’의 성별, 연령병 시청자 수(닐슨코리아·수도권 기준)를 확인해 보니, 남녀 20대 시청자가 30대보다 많았다. 24일 방송 기준 남녀 30대 시청 비중이 20대보다 많은 tvN 드라마 ‘엄마친구아들’과 JTBC ‘가족X멜로’와 정반대다. 직장 내 세대 갈등에 공감한 ‘사회 초년생’ 20대 시청자들이 ‘굿파트너’를 보러 TV 앞으로 몰려 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 속 장나라와 남지현의 가치관 충돌이 요즘 직장의 세대 갈등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며 “이혼 전문 변호사인 장나라가 이혼한다는 설정으로 이성적이어야만 하지만 감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혼 과정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를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을 들게 하지 않는 것도 이 드라마의 장점”이라고 평했다.

K콘텐츠 시장엔 이혼 소재 드라마 제작이 부쩍 느는 추세다. SBS ‘끝내주는 해결사’를 비롯해 최근 1년 새 공개된 이혼 소재 드라마는 5편 이상이다. 모두 TV를 중심으로 유통됐다.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폭군’ 등 범죄 스릴러 장르가 OTT를 중심으로 공개됐다면, 이혼 드라마는 TV로 몰린다. 이혼 소재 드라마를 기획한 제작사 관계자는 “방송사들이 중장년 TV 시청자를 잡기 위해 이혼 소재 드라마 편성에 더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혼 소재 개발도 활발하다. 제작사 몽작소는 보험사에서 이혼 보험 상품을 개발하는 가상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 ‘이혼보험’을 기획해 올가을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스튜디오 관계자는 “요즘 이혼을 소재로 한 드라마 대본이 (시장에서) 자주 눈에 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통계청이 낸 ‘2023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혼인 건수는 약 19만 건이고, 이혼은 9만 건이다. 두 쌍이 결혼할 때 한 쌍이 이혼하는 셈이다. 이혼 소재 드라마 제작이 활발히 이뤄지는 사회적 배경이다. 김헌식 중원대 사화문화대 특임교수는 “예전엔 이혼을 남의 이야기로만 소비했다면 이젠 이혼이 점점 일상화되면서 그 위기 상황과 해결 방법을 다룬 콘텐츠에 더욱 몰입하는 것”이라고 달라진 흐름을 짚었다.

이혼은 JTBC ‘이혼 숙려 캠프’, MBN ‘한 번쯤 이혼할 결심’ 등 예능에서 리얼리티 콘셉트로 더욱 노골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로 인해 그늘도 짙어졌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이혼 소재 드라마는 이혼 당사자의 소통 과정을 소모적으로 보여주는 경향 아래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혼 리얼리티 예능들은 쇼트폼을 통해 갈등만 짜깁기된 방식으로 유통되면서 혼인 관계에 대해 할 수 있는 다양하고 진지한 사유들을 어렵게 만든다”고 꼬집었다. [출처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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