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27일(현지시간) 마수드 페제시키안 신임 대통령에게 ‘적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해 주목된다.

서방 매체는 핵협상 재개의 신호로 해석했으나 실제 발언의 맥락을 살펴보면 서방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새 행정부에 경계와 주의를 당부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이날 페제시키안 대통령과 신임 내각에 “상황에 따라 같은 적과 상호 접촉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고 그 접촉이 해가 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희망을 적에게 걸고 신뢰해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미국과 핵협상에 나설 것임을 내비친 것”이라고 분석했고 AP 통신은 “최고지도자가 이란 핵프로그램을 두고 미국과 협상에 문을 열어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메네이 공식 사이트는 이날 발언 전문을 게시하며 ‘계획을 세울 때 적의 허락을 기다리지도 말고 적을 믿지도 말라’는 제목을 달았다.

외교엔 적극적으로 나서되 서방의 호의에 기대기보다는 자국 이익을 능동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의중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장애물을 만날 때 되돌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잘못된 태도로, 이를 극복하거나 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최선을 다한 뒤 전략적 후퇴는 필요하지만 난관의 징조가 보이자마자 목표를 포기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서방과 협상과 관련,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그는 협상 자체를 명시적으로 불허한 적은 없는 만큼 이날 ‘서방과 상호 접촉’ 언급만으로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이란은 2015년 서방과 핵협상을 타결했지만 3년 만에 이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란 프레스TV 등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대통령도 이날 압바스 아락치 외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적들의 행동은 잔인하다”며 “우리는 약속을 지켰고, 그들도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취임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대선 때 서방과 협상으로 제재를 풀어내 경제난을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새 정부에서 핵협상 타결의 주역 중 한명인 아락치가 기용되면서 이란이 서방과 협상을 재개하리라는 기대가 커지는 터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종 결정권을 쥔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새 내각과 처음 만나 서방과 접촉 시 ‘최우선 주의사항’을 전달한 셈이다.

이란 핵협상 재개의 가장 큰 국제적 변수는 11월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다면 재개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외교협회의 이란 전문가인 레이 타케이 선임연구원은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이번 발언과 관련, “이전 (이란) 행정부의 많은 사람은 트럼프를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보는 탓에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본질적으로 해리스가 승리할 경우를 가정해 협상의 매개변수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이란 전문가 메르자드 보루제르디는 이 발언이 미국과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대화에 대한 청신호를 뜻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최근 몇 년간 그의 공개 발언은 다소 일관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실은 이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국은 이란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며 양국의 갈등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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