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미정 김(36)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한국처럼 여유롭진 않았다. 한국에서 빳빳한 양복을 입고 다니던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미국에서 너덜너덜한 티셔츠를 입은 백인들에게 무시당했다. 아버지의 곤욕을 보며 성공하겠다는 일념이 커졌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급여 수준이 높은 직장에 안착했다. 노력하면 인종주의와 성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다니던 직장에선 성적으로 괴롭힘을 당했고, 직장 내 폭력에 대한 내부고발을 했을 때는 보복이 이어졌다. 이 밖에도 미묘한 인종적, 젠더적, 동성애 차별을 일상에서 무수히 받았다.
그는 그 과정에서 차별과 억압, 혐오와 분열의 문제가 교묘하게 유지되고 있는 구조적 시스템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구조적 시스템은 보건·의료, 사법, 산업, 교육, 언론 등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있었다. 미셸 미정 김은 법학자 프랜시스 리 앤슬리의 말을 인용해 구조적 시스템을 설명한다.
“백인들이 압도적인 비율로 권력과 물적 자원을 통제하고, 백인의 우월성과 자격에 대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견해가 널리 퍼져 있으며, 백인의 지배와 비백인의 종속이라는 관계가 다양한 제도와 사회적 상황에 의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시스템을 의미한다.”
최근 출간된, 미셸 미정 김이 쓴 ‘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세계에 살고 있다'(The Wake Up)는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가는 세계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촉구하는 책이다.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빈익빈 부익부가 강화하고, 백인우월주의가 여전히 강고한 상황에서 차별받는 이들이 모두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차별이 각각 따로 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억압은 동시에 싸워야 할 문제이지,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씩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득권층이 획책한 ‘갈라치기’ 전략 탓에 이권이 다른 계층이 연대하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백인 등 기득권층은 앞서 언급한 ‘구조적 시스템’을 활용해 불평등한 조건에 대한 분노와 비난의 화살을 억압자가 아닌 억압받는 집단에 돌리도록 유도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가령, 저소득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 탓에 취업 기회가 줄어들고, 경쟁률이 높아진다며 그들을 비난하는 데 몰두한다. 노동권을 강화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모든 노동자에게 이로운 데도 싸우는 데 몰두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구조적 시스템은 저소득 노동자들의 사고 체계에 강력한 영향을 행사한다. 저자는 사회적 약자들인 저소득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척질 게 아니라 단결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비슷한 관점에서 저자는 흑인 및 갈색인종은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며 유색인종 간의 차등을 두는 우를 범하는 대신 ‘백인중심사회’의 문제점을 타파하고 모든 인종이 공평한 기회를 누리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주장한다.
“억압이라는 해악은 단지 시스템에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 각자의 내면, 우리가 상호 작용하는 방식, 그리고 직장, 학교, 가정, 동네 등 우리가 영향을 주고받는 공간 내에도 존재한다. 우리는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만큼, 우리가 해로운 시스템과 공모하는 측면 또한 인식해야 한다.”
쌤앤파커스. 허원 옮김. 45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