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부터 시작되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중을 앞두고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 간 비밀 채널이 그동안 어떻게 가동됐는지를 조명한 보도가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6일(현지시간) ‘미국-중국 간 비밀스러운 막후채널(backchannel)의 내부 이야기’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양국의 최고 외교 책사인 두 사람 간의 회동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고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는지를 집중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중국 정찰풍선이 미국 상공을 지나가며 양국 관계가 1979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한 지 3개월 후, 설리번 보좌관은 자신만의 은밀한 임무에 착수했다.
지난해 5월 10일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왕이 주임과 첫 비밀 회동을 추진한 것이다.
두 사람을 포함한 미중 관리들은 보안을 유지한 채 이틀간 호텔에 머물며 8시간 이상 대만 문제와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 등 양국 갈등 현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대만을 둘러싼 갈등에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며 미국은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왕 주임은 “대만 독립이 양안 평화에 가장 큰 위험이며 중미 관계에 가장 큰 도전”이라며 물러서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설리번 보좌관이 양국이 경쟁 관계에 있지만 협력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자, 왕 주임은 미국이 양국 관계를 경쟁 관계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며 미국의 수출통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당시 회동으로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양국 관계를 재부팅(reboot) 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다고 FT는 전했다.
회동을 통해 지난해 6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방중하고 또 다른 고위급 간 상호 방문이 재개되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넉 달 뒤인 같은 해 9월 설리번 보좌관과 왕 주임은 2번째 회동을 위해 몰타에 도착했다.
몰타 회동에서 두 사람은 두 달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성사된 양국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데 주력했다.
큰 틀에서의 합의 이후 왕 주임은 다음 달인 10월 워싱턴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예방하고 설리번 보좌관과 정상회담 의제를 최종 조율했다.
마약 펜타닐 생산 억제 조치와 양국 간 고위급 군사 소통 채널 복원 등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들은 설리번-왕이 채널을 통해 도출됐다.
두 사람 간 가장 최근 회동은 올해 1월 태국 방콕에서 있었다.
방콕 회동에서 미국은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와 러시아에 대한 지원 문제를 제기했고 중국은 “미국이 작은 뜰에 높은 담장'(small-yard, high-fence) 전략으로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 한다”고 맞섰다고 FT는 전했다.
두 사람 간 채널은 우여곡절 속에 갈등 현안을 쉽게 해결하지는 못했음에도 양국 간 갈등 수위를 낮추고 상대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설리번 보좌관은 FT에 “이 채널이 중국이 정책을 바꾸도록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미·중 관계 역학 구도를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 우리가 정책을 취하고 그것을 관리해 양자관계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의 중국 전문가인 로리 대니얼스도 “이러한 비밀 채널이 경쟁하는 두 강대국 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양국 관계를 단기적으로 안정화하는 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FT는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간 소통 채널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2021년 3월 미국 알래스카 회동에서 미국과 공개 설전을 벌인 양제츠 전 주임에 비해 덜 논쟁적인 왕 주임 스타일이 회동 성과를 도출하는 데 도움을 줬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