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달모’ 롤모델 이명우씨

풀코스 완주 ‘노익장’ 기염
GM서 은퇴후 MBA·CPA 새삶
회원들 ‘구순잔치’ 축하

“인생은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달리는 마라톤 같은 것입니다. 반대로 마라톤에는 인생이 함축돼 있다고 볼 수 있죠.”

90세의 나이에도 현역으로 달리며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한인 노익장 마라토너 이명우씨의 말이다. 이씨는 한인 마라톤동호회 동달모(회장 김건태)의 최고 어른이자 모든 한인 마라톤 동호회원들의 최고의 롤모델로, 특히 지난 18일 구순을 맞아 회원들이 훈련 현장에서 그의 생신을 축하하는 ‘졸수연(90세 생신잔치)’을 마련해 화제가 됐다.

일요일인 18일 새벽, 어바인 지역의 힉스 캐년 공원. 한여름이지만 새벽공기가 다소 차갑게 느껴지는 오전 6시가 되자 동달모 회원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 2월 어바인의 한 성당 교인들을 중심으로 10여 명이 시작한 동달모는 현재 10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초창기 남가주 한인 마라톤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임우성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한 회원들은 이제 마라톤을 몇 번 완주한 멤버들이 여럿 포진해 있을 정도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1935년 서울에서 출생한 이명우씨는 일제강점기 말 극도로 궁핍한 시절과 해방, 6.25 전쟁을 모두 겪었다. 전쟁 통에 양친 부모는 모두 돌아가셨다. 위로 12남매가 있었지만 모두 어린나이에 사망해 이명우씨는 하늘 아래 철저하게 혼자로 남았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였다. 홀로 고군분투하던 이명우씨에게 어느 날 실낱같은 희망이 다가왔다. 기독교 단체의 주선으로 미국의 한 독지가가 이명우씨의 후원자가 된 것이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고등학교까지 마친 이명우씨는 대학에 진학했다. 1972년 후원자를 만나고자 미국으로 건너와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되면서, 한국에 있던 부인과 자녀들을 모두 초청해 본격적인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이민생활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농장일, 주유소, 도넛가게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나갔다. 그러던 중 1979년 제네럴 모터스(GM) 라인 노동자로 입사 27년을 근무하고 은퇴했다. 의대에 진학한 아들의 등록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며 부업을 하고, 한인이 10명도 없던 조직에서 노조 지부장으로 선출돼 활동하는 등 정말 열심히 살았다.

이렇듯 치열하게 살아온 이명우씨에게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이란 인생의 마무리가 아닌 또 다른 기회를 의미했다. 은퇴 후 MBA와 CPA 자격증을 취득한 이명우씨는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지역사회를 위해 적극적인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75세에 동달모에 가입하면서 LA 마라톤 등 다수의 마라톤에 참가해 풀코스를 완주하고 에이지 그룹에서 고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90세 현역 마라토너인 이명우씨는 다음 달 열리는 대회 현대런에서 3마일 1시간 내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케익에 불이 켜지고 모두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이명우씨는 힘찬 숨으로 촛불을 껐다.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는 딸과 해외에 사는 손녀도 할아버지의 졸수연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잠시 건너왔다. 자리에 모인 동달모 회원 모두 이명우씨의 아들 딸, 혹은 손자 손녀처럼 즐거워하고 진심으로 축하했다.

[미주 한국일보 황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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