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 위험점수가 35점으로 나왔네요. 위험도로 따지면 중간 단계라 제법 잘 관리하고 계신 걸로 보입니다. 그 연세에는 심혈관 위험점수가 50점을 훌쩍 넘는 고위험군 환자도 많거든요. ”
“교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결 마음이 놓이네요. 고혈압, 고지혈증에 부정맥까지 생겼다고 하니 도무지 마음이 놓이질 않았거든요. ”
이달 초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외래 진료실. 심방세동 진단을 받은 지 한달 여만에 내원한 서경자(73·가명) 씨가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심방세동은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는 질환이다. 심방 쪽에서 비정상적 전기신호가 생성돼 정상적으로 수축하거나 이완하지 못하면서 심장 리듬이 깨진다. 그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거나 어지럽고 숨이 차는 증상을 보이는데 가슴 뛰는 것에 무감각해져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고혈압·고지혈증 오래 앓으면 합병증 위험 껑충…눈 속 혈관도 위협
심방세동이 위험한 이유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에 의해 심장 내 혈액이 고여 혈전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혈전이 혈류를 타고 흐르다가 뇌 또는 심장혈관으로 흘러 들어가 혈관을 막으면 뇌졸중, 심장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고령이거나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 등 심뇌혈관계 위험인자가 많고 오래될수록 심방세동·심근경색증·뇌졸중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심방세동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환자 중 약 84%에 해당하는 24만 6776명이 60세 이상으로 집계됐다.
서씨는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진단을 받은지 20년도 넘어 약을 먹는 데 이골이 났다. 몇 달 전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워도 나이 탓이라고만 여겼는데 심장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니 덜컥 겁이 났다. 그런 마음을 읽은 걸까. 주치의인 이찬주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서씨에게 안저검사를 권했다. 안구 뒤쪽 내벽에 ‘망막’이라는 얇은 신경조직이 붙어 있는데 간단하게 안저사진을 찍기만 하면 망막질환, 녹내장, 백내장 의심 여부와 함께 심혈관 위험도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실제 안저검사는 서씨처럼 고혈압 유병기간이 매우 긴 환자에게 정기적으로 권유되는 검사다.
혈압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혈관을 이루고 있는 근육과 내피 세포가 손상 받아 망막에 혈액이 고이고 그로 인해 시력장애가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는 ‘고혈압망막병증’이라고 한다. 고혈압약을 그토록 오래 복용하면서도 안과검사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서씨는 이번 검사를 통해 ‘백내장 의심’ 소견이 확인돼 안과 진료가 의뢰됐다. 자칫 놓칠 뻔한 백내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은 셈이다.
◇ 망막 촬영 분석해 심혈관질환 위험도 평가…의료현장에서 본격 처방 시작
서씨가 받은 검사는 망막 촬영으로 심근경색, 뇌졸중, 심부전 같은 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인공기능(AI) 의료기기 ‘닥터눈’이다. 국내 의료 AI 기업인 메디웨일이 2020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거쳐 2022년 8월 심혈관 위험평가 의료기기 품목허가를 받았다. 심혈관질환의 발병 위험도를 예측하는 AI 의료기기가 상용화에 성공한 세계 첫 사례다. 닥터눈은 작년 6월 평가 유예 신의료기술로 확정 받아 약 3년 동안 외래진료 환자에게 비급여로 처방이 가능해졌다. 환자는 기본적인 안저검사 비용 외에 5~10만 원 가량을 추가 부담하면 된다. 이 기간 축적된 임상을 근거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평가를 통해 급여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