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침 도는 한 상이 차려졌다(사진). 오징어볶음과 조기구이, 갈치조림, 우럭회, 그리고 꽃게탕. 전 세계에서 수산물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로 꼽히는 한국인(1인당 기준)이 식당이나 집에서 자주 찾는 친숙한 요리들이다.

그런데 먹음직스러운 이 해산물들은 과연 건강할까. 북중미 바다에서 서식하는 크릴새우나 청어 등 해외 수산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뉴스가 종종 들려오지만, 우리 먹거리와는 무관한 이야기로 치부됐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한반도 연근해에 사는 어류와 갑각류의 체내 플라스틱 축적 실태를 직접 검증해봤다.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해산물 속에 미세 플라스틱(5㎜ 미만인 플라스틱 입자)이 쌓여 있지는 않은지 살펴본 것이다. 동∙서∙남해에서 잡힌 다섯 가지 자연산 수산물을 시험 대상으로 했으며, △은갈치(남해산) △우럭(남해산) △오징어(동해산) △참조기(서해산) △꽃게(서해산)를 수산시장 두 곳에서 직접 구입했다. 시험은 한국분석과학연구소(KIAST)가 한국일보 의뢰로 지난 7월 진행했다.

의류·포장용기 등 재료, 버린 만큼 돌아와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시료(해산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연구진은 각 생선의 살과 내장, 아가미 부위를 조금씩 뜯어내 5g의 시료를 만든 뒤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은갈치·오징어에서는 미세 플라스틱 27개(5g당 기준)가 나왔다. 우럭과 참조기에선 13개, 꽃게에선 7개가 발견됐다.

우리가 평소에 많이 사용하는 플라스틱이 고기 배 속에서도 많이 나왔다. 우선, 검출된 전체 미세 플라스틱의 절반(48%)가량이 폴리프로필렌(PP)이었다. 가볍고 열에 강한 플라스틱 소재로 기능성 의류나 식품 용기, 자동차 범퍼 등을 만들 때 쓰인다. 폴리에틸렌(PE·24%)과 폴리스티렌(PS· 18%)이 다음으로 많이 검출됐다. PE는 샴푸병이나 두부 포장 용기 등을 만들 때 흔히 사용되고, PS는 일회용컵이나 즉석밥 용기 등 식품 포장 때 쓰인다. 밧줄과 어망 등의 어구도 주로 PP와 PE로 제작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체 플라스틱 종류 41종 가운데 PE(24%), PP(16%), PS(5%)의 사용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된다.

시험 결과가 말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바다는 가늠할 수 없는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오염됐고, 이를 먹지 않은 고기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시험을 총괄한 정재학 KIAST 소장은 ”모든 시료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100% 검출됐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물고기가 밥상 위에 오르고, 이를 섭취한 우리 몸에도 플라스틱이 쌓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미세 플라스틱을 얼마나 먹어야 인체에 해로운지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해선 아직 국제적으로 합의된 게 없다. 미세 플라스틱을 섭취했다고 해서 유해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단계라는 뜻이다. 하지만 생선 등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공기 내 흡입을 통해 플라스틱 조각이 체내에 쌓이면 각종 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높이고 태아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점점 쌓이고 있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한다.

우리 어장에 플라스틱을 풀어놓은 자는 누구일까. 범인을 쫓기 위해 장마철마다 쓰레기 대란을 겪는 서해의 충남 서천군으로 향했다.

지난달 11일 충남 서천군 장항항 인근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전문가들은 장마철 떠내려온 '쓰레기 폭탄'이 재해에 가깝다며 '재해성 쓰레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천=이한호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지난달 11일 충남 서천군 장항항 인근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전문가들은 장마철 떠내려온 ‘쓰레기 폭탄’이 재해에 가깝다며 ‘재해성 쓰레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천=이한호 기자

폭우 만큼 무서운 ‘쓰레기 폭격’…엉망된 ‘유네스코 갯벌’ 서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서천 갯벌’

7월 11일, 서천군 비인 해변의 백사장 옆으로 대형 기념비가 서 있었다. 서해안을 따라 72.5㎞ 뻗은 서천 갯벌은 2021년 전북 고창, 전남 신안∙보성∙순천 갯벌과 함께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자연유산이 됐다. 넓적부리도요 등 세계적 희귀 철새가 머무는 쉼터. 그러나 이곳은 여름 장마철만 되면 내륙에서 떠내려온 쓰레기로 엉망이 된다. 기자가 찾아간 그날도 모래사장에는 농약 페트병과 라면∙커피 믹스 봉지, 모텔 이름이 적힌 라이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대형 구조물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직전 이틀간 서천에는 287㎜의 폭우가 쏟아졌다. 한 해 평균적으로 내리는 강수량(1,697.8㎜)의 6분의 1이 이틀 만에 퍼부었다.

차를 타고 남쪽으로 30분쯤 달리면 나오는 서천 장항항의 풍경도 다를 바 없었다. 항구에 정박된 선박 주변 바다에는 각종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갈대와 페트병, 플라스틱 김치통과 비닐봉지 등 쓰레기가 찐득한 펄처럼 선박 주변을 덮어버렸다. 출항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무리해서 배를 움직이려다 쓰레기를 빨아들여 엔진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먼 바다에는 스티로폼과 방충망, 아이스박스, 그물 등이 뭉친 20~30㎡ 크기의 ‘쓰레기 섬’이 떠다녔다. 장항항 인근 수협 건물 앞에는 10년간 떠내려온 쓰레기를 쌓아놓은 ‘쓰레기 산’도 있다. 여러 번 치웠지만, 여전히 수북했다.

집중호우가 내린 직후인 지난달 11일 충남 서천군 장항항에 정박해 있던 배들 사이로 금강을 타고 흘러든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다. 서천=이서현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집중호우가 내린 직후인 지난달 11일 충남 서천군 장항항에 정박해 있던 배들 사이로 금강을 타고 흘러든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다. 서천=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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