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남성,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 정치인 지지 주저해와”
해리스 ‘흑인 잡아들인 검사이자 민주당 주류’ 이미지에 이탈 막으려 부심
트럼프도 “난 흑인 남성들과 잘 지내” 구애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의 대결 구도로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흑인 남성의 표심이 승부를 가를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적지만 유의미한 수의 흑인 남성들이 역사적으로 권력의 최상위직에 도전하는 흑인 여성을 지지하는 데 주저해왔다면서 이들이 오는 11월 대선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짚었다.
흑인 여성 정치인으로서 ‘최초’ 행보를 이어간 인물인 셜리 치점은 1972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을 때 흑인 남성 정치인들의 반발에 직면한 바 있다.
치점은 미국 연방의회에 입성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자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온 첫 여성 후보였지만, 흑인 남성 동료들은 그들의 허락을 받고 경선에 출마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NYT는 전했다.
치점은 당시 상황에 대해 “흑인 남성 정치인은 백인 남성 정치인과 전혀 다를 게 없다”고 돌아봤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인 2022년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 캠페인 기간 그에 대한 흑인 남성들의 지지가 시원치 않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에 에이브럼스는 흑인 남성 표심을 결집하기 위한 모임까지 조직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공화당 백인 남성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NYT는 이처럼 흑인 남성 유권자들이 흑인 여성 정치인을 지지하기를 망설이는 것이 ‘방 안의 코끼리’와 같다고 지적했다. 방에 코끼리가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지만, 동시에 모두가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리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흑인처럼 사회 문제에 보수적인 인구집단이 역사적으로 리더십을 남성성과 동일시해왔으며 이는 교회나 기업, 정치권 등에서 흑인 여성 지도자가 부족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모야 베일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이러한 가부장적인 경향이 흑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는 “흑인 사이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고 짚었다.
해리스 부통령의 경우 흑인 여성이라는 점 외에도 검사 시절 구축한 ‘최고 경찰’ 이미지도 문제라고 NYT는 전했다. 검사로서 범죄 소탕에 앞장서 온 이력은 흑인 남성을 잡아들인 인물이라는 인식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가 민주당 주류를 대변하는 정치인이라는 점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으로 평가돼온 흑인 남성들 사이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과거보다 낮아졌다는 것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민주당의 첫 흑인 여성 대선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측은 이런 점을 예의주시하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올해 초 흑인 남성 지도자 그룹을 관저로 초대해 지역사회 현안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해리스 부통령에게 현 행정부의 정책이 흑인 공동체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엔필드 시장인 W. 먼데일 로빈슨은 최근 한 온라인 모금행사에서 정치인들이 선거 공약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불신이 크다며 흑인 남성 유권자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말하는 모든 것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흑인 남성의 지지를 자신하며 표심 공략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지난주 한 기자회견에서 “나는 흑인 남성들과 아주 잘 지내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또한 불법 이민자들이 흑인의 일자리를 차지한다고 주장하고, 민주당이 흑인 유권자들을 버렸다고 비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 캠프의 참모들도 트럼프 전 대통령 쪽으로 이탈한 일부 흑인 남성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힘의 형상화’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의 지지를 되찾아와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민주당에서는 흑인 남성들을 향해 더 당당하게 흑인 여성 정치인을 지지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주당 소속 일리노이주 법무장관인 콰미 라울은 “때때로 흑인 남성들은 흑인 여성 지도자를 지지하는 것이 흑인 남성으로서의 힘을 보여주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대선 후보로 떠오른 직후 흑인 남성들을 상대로 모금운동에 나섰던 라울 장관은 “하지만 흑인 여성을 지지한다고 내가 모자란 흑인 남성이 되지는 않는다. 나와 함께 해달라”고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