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증 발작에 구급차 요청했는데 경찰만 출동
경찰, 사전 공지에도 현관 부수고 진입
생수통 들고 있는 피해자에 총격
미국 뉴저지주(洲)에서 조울증을 앓던 20대 한인 여성이 출동한 경찰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이 벌어져 경찰의 과잉 대응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조울증을 앓던 한인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한인회와 피해자 측 변호사, 뉴저지주 검찰 발표 등을 종합하면 뉴저지주 포트리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 모(26)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1시25분께 자택으로 출동한 현지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사건 직전 이 씨 가족은 조울증 증세가 심해진 이 씨를 평소 진료받던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 911에 구급차를 요청했다. 당시 이 씨는 조증 발작이 경미하게 일어난 상태였다. 이 씨는 병원 이송을 거부하며 택배 상자를 열 때 사용하는 소형 접이식 주머니칼을 손에 쥐었고, 이 씨의 오빠가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911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 씨가 주머니칼을 소지하고 있는 사실을 알리면서 크기가 작다는 점을 강조하고 경찰이 집 내부에 들어오지 말 것을 요청했다. 이에 911은 정신건강 사건과 관련해선 경찰이 출동해야 한다고 이 씨의 오빠에 알렸다.
이 씨는 평소 폭력 성향을 보이지 않았고, 주머니칼은 남을 위협하려고 쥐었던 게 아니었다고 이 씨 유가족은 전했다. 구급대원 없이 경찰만 출동한 상황에서 상황 악화를 우려한 이 씨 가족은 출동한 경찰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 이 씨가 진정되길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은 현관을 부수고 이 씨 집에 진입했고, 당시 5갤런(18ℓ)짜리 대형 생수통을 들고 현관 근처에 서 있던 이 씨를 향해 총격을 1회 가했다. 총알은 이 씨 흉부를 관통했고, 경찰은 모친을 이 씨와 분리시키며 이 씨가 살아있으며 병원으로 이송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병원에 간 이 씨의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딸의 사망 소식이었다. 이 씨는 새벽 1시58분께 사망 판정을 받았다.
8일(현지시간) 경찰 총격에 사망한 이모(26) 씨 자택 현관 문틈으로 이씨가 피격 당시 들고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대형 생수통이 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뉴저지 검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칼을 수거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씨 유가족은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올 당시 주머니칼은 이 씨 손이 아닌 바닥에 놓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문을 부수는 소리에 두려움을 느껴 물통을 들고 있었을 뿐인데 경찰이 진입 후 이 씨를 보자마자 총격을 가했다는 것이 유가족의 입장이다. 흉기를 소지하거나 출동 경찰을 위협하는 등의 행위가 없었는데도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과잉 대응을 했다는 것이다.
뉴저지주 검찰은 사건 발생 1주일 후 총격을 가한 경찰관 이름이 토니 피켄슨 주니어라고 공개하고, 관련 법규에 따라 경찰이 적법하게 대응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자세한 사건 경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이 씨는 정신건강 문제로 2021년 학업을 포기하긴 했지만 여행, 악기 연주, 반려견과 시간 보내기 등으로 컨디션을 관리했다. 이후 건강 상황이 나아지면서 뉴욕 맨해튼의 음악 스튜디오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그는 생전 음악에 관심이 많고 애정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8일(현지시간) 이씨가 거주하던 자택 거실에 이모(26) 씨가 음악 작업에 사용하던 음악 기기가 남아있는 모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