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경찰관 “저격 지점에 요원 배치하란 말 비밀경호국이 무시” 주장
“SS에 닿으려면 많게는 세 다리 거쳐야”…소통부재가 경호구멍 초래했나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지난 달 13일 벌어진 총격 사건의 바로 직전과 직후 상황을 보여주는 경찰 보디캠 영상이 추가로 공개됐다.
유세장 주변에 배치됐던 한 경찰관이 비밀경호국(SS)이 건물 지붕에 인원을 배치해야 한다는 말을 무시했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 등 부실 경호 정황이 영상에 다수 포함됐다.
총격 직전 범인을 발견한 경찰관이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가 하면, 단일 통신망 미비로 경찰이 SS와 의사소통을 하려면 많게는 세 다리를 거쳐야 했던 난맥상도 확인됐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타운십 경찰관들이 착용하고 있던 보디캠 영상을 입수,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전후 경호 당국 사이에서 벌어진 적나라한 혼선을 전했다.
영상에서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한 경찰관은 20세 남성 토머스 매슈 크룩스가 트럼프를 향해 총탄을 발사한 직후 “난 그들(SS)에게 저 위에 사람들을 배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었다. 지난 화요일(7월9일)에 그렇게 말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SS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니까 그들은 ‘그래, 문제 없다. 우리가 이 위에 사람을 배치할 것이다’란 식으로 말했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발언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암살이 시도되기 이미 나흘 전에 저격범이 총을 겨누기 위해 올라간 건물 지붕에 경호 인력을 둘 필요성을 지적했지만, 합당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음을 힐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경찰관은 의심스러운 인물을 포착했다가 종적을 놓쳤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아까 우리가 찾고 있던 넓적한 얼굴의 남성”을 언급하면서 “그는 급수탑 옆 숲속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제압된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 경찰과 SS는 총격 62분 전 일찌감치 크룩스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고서도 행적을 놓쳐 범행을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 10분 뒤 총격이 발생한 건물에 도착한 경찰관은 “난 너희들이 옥상에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고, 그렇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무슨 소리냐. 왜 우리가 지붕에 없었던 거냐”며 당황해하는 장면도 영상에 찍혔다.
WSJ이 입수한 영상 중에는 트럼프가 유세 중인 연단으로부터 불과 135m 떨어진 창고 건물 지붕에 올라가 AR-15 계열 반자동 소총을 든 크룩스를 발견한 경찰관이 빠르게 아래로 내려오는 모습도 잡혔다.
현지 경찰당국이 제공한 녹취록을 보면 이 경찰관은 직후 무전을 통해 “그(크룩스)는 무장했다. 난 그를 봤고, 그는 누워 있다”고 알렸고, 순찰차로 달려가 소총을 챙겼다.
그는 용의자가 안경을 쓴 장발 남성으로 총과 탄창을 갖고 있으며 “엎드려 있고 옆에는 책가방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찰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크룩스는 연단을 향해 총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귀를 다치는 경상에 그쳤으나, 유세에 참석한 시민 3명이 죽거나 다쳤다. 저격범인 크룩스는 이후 경호팀 저격수에 의해 사살됐다.
미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SS는 현지 경찰이 문제의 창고 건물을 통제할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현지 경찰 당국자는 건물 지붕이 아닌 2층에 저격수를 배치할 것임을 SS 측에 사전 고지했다는 입장이다. 기온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 시야 확보에 문제가 있는 경사진 지붕에 인원을 배치하길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경호 당국 간 엇박자를 키운 것은 관련 기관 간의 소통 부재였다.
WSJ은 당국자들을 인용, 사건 발생 당시 유세장 안팎의 전파 수신 감도가 나빴던 데다, SS를 비롯한 연방기관과 주정부기관, 버틀러 현지 경찰을 하나로 잇는 통신망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SS는 버틀러 카운티 특수기동대(ESU)를 비롯한 현지 경찰 조직들과는 제한적으로만 소통을 했던 까닭에 경찰이 SS 측에 정보를 전달하려면 많게는 세 다리를 거쳐야 했다고 한다.
WSJ은 “SS는 현지 경찰이 유세에 앞서 설치한 지휘부에도 요원을 배치하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을 경호하는 이 기관에 중요한 정보가 쉽게 전달될 수 없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실제 창고 지붕에서 크룩스를 처음 포착한 경찰관이 이후 크룩스의 시신 곁에 선 전술복 차림의 동료들에게 “난 ‘지붕 위에 있다’고 외치고 있었다. 같은 주파수대에 있었던 게 맞냐”고 말할 정도였다고 WSJ은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