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애국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 TSMC 주식을 사는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글로벌 패권 경쟁이 군사력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자원과 공급망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대만인들에게 TSMC 주식 매수는 단순한 투자를 넘어선 의미를 갖게 됐다.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미국·유럽·아시아 등 전 세계 국가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실리콘 방패’를 보호하자는 의지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1일 블룸버그통신이 대만 증권거래소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TSMC 주식의 7월 단주 매매(odd lot trading) 거래액은 26일 기준 618억 대만 달러(약 2조 5800억 원)로 월별 통계로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단주 거래는 주로 소액 개인투자자들이 하는 1000주 미만의 거래를 의미한다. 일부 소액 투자자들은 TSMC를 지원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심지어 결혼 준비 자금을 빼내 주식을 사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정보기술(IT) 엔지니어인 제임스 펑은 블룸버그에 “TSMC가 망하면 대만도 망한다”며 “이 회사에는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펑은 2년 전부터 TSMC에 투자하고 있으며 그의 투자 포트폴리오의 3분의 1가량이 이 회사 주식이다. 또 다른 투자자인 어거스트 추앙도 “TSMC가 대만을 대체 불가능한 첨단기술 공급처로 만들었다”며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억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TSMC가 강해질수록 나와 우리 가족이 더욱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믿음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0% 이상으로 세계 최대 규모다. 애플과 엔비디아 설계 칩을 포함해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 대한 사실상의 독점권을 지니고 있다. 내년에 대만에서 최첨단 2㎚(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생산에 본격 나설 예정인 가운데 대만 정부는 “가장 앞선 반도체 기술을 국내에 유지한다”는 방침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TSMC가 최근 일본 구마모토에 공장을 열고 미국과 유럽에 추가 공장을 건설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만을 핵심 생산 기지로 키워간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대만이 이른바 ‘실리콘 방패’의 혜택을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짚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는 만큼 TSMC의 존재만으로도 중국의 군사행동을 억제하는 요인이자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대만을 보호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단적으로 최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만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모두 가져갔다. 대만이 미국에 방위비를 내야 한다”고 밝혀 TSMC 주가가 급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 내 소액 투자자들의 매수세는 이어지고 있다.

전략자산으로서의 가치 외에도 TSMC가 대만 국내총생산(GDP)의 8%를 차지한다는 점 역시 개인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서는 동력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TSMC는 대만 주식시장 종합지수인 자취엔지수(Taiex Index) 가중치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일각에서는 TSMC 소액 투자 러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개인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해 ‘중국의 침공보다 더 현실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주가의 급격한 하락 리스크다. TSMC 주가는 올해 들어 58% 상승하며 현재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20배에 근접해 5년 평균인 18.8배보다 높다. 펠릭스 리 모닝스타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더 오를 여지는 있지만 리스크 대비 수익률은 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74%에 달하는 높은 외국인 지분율 역시 또 다른 위험 요소다. 외국인투자가의 대량 매도 시 소액 투자자들이 쉽게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2008년 이후 데이터에 따르면 해외 펀드는 7월 들어 58억 대만 달러 규모의 TSMC 주식을 순매도했는데 역대 최대 규모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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