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혼합현실(XR) 기기용 칩에 대한 독자 개발에 착수한 것은 고난도 연산이 가능한 자체 반도체가 있어야 애플·메타 등 라이벌을 꺾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공지능(AI) 모델이 강력해질수록 이를 구현해낼 디바이스인 XR 기기의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X 사업부가 반도체(DS) 사업부와 별도로 XR 칩 개발에 나선 배경에도 이 같은 이유가 자리잡고 있다. 스마트폰을 잇는 캐시카우를 미리 선점하기 위해 기술 경쟁을 선언했다는 뜻이다. 실제 시장조사 업체 마케츠앤드마케츠에 따르면 세계 XR 시장 매출은 2023년 401억 달러에서 2028년 1115억 달러로 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XR 로드맵에 관한 윤곽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노태문 삼성전자 MX 사업부 사장은 지난달 10일 ‘갤럭시 Z폴드6’ 출시 행사에서 “연내 XR 플랫폼을 선보이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내년 출시할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 S25에는 XR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 기기의 설계를 대폭 변경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전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기존 XR 기기의 형태를 탈피한 스마트 글라스를 2026년에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개발(R&D)에 매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XR 기기 라이벌은 애플과 메타다. 이들의 공통점은 XR 기기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은 연초 출시한 비전프로에 자체 개발한 AP인 ‘M2’와 그래픽 칩인 ‘R1’을 탑재했다. 메타는 ‘아리아’라는 스마트 글라스 프로젝트를 통해 TSMC의 4㎚(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을 활용하는 자체 AP를 대중에게 공개한 바 있다.

또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XR 기기를 착용했을 때의 멀미 현상을 방지하고 최소화한 크기로 고성능 연산을 해낼 수 있는 기기를 만들려면 특정 반도체 파트너사의 공급에 의존하기보다 자체 칩 개발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삼성전자 MX 사업부 역시 라이벌 회사들의 동향을 살피면서 전용 반도체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DS 부문의 시스템LSI 사업부는 MX 사업부의 독자 XR 칩 개발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새로운 모바일 기기의 출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칩 설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부는 올해 3월 AI 추론 칩 ‘마하1’ 발표의 연장선상으로 온디바이스 AI 기기용 칩인 ‘마하 엣지’ 개발을 위한 계획 수립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하 엣지를 모바일 기기용으로 개발할지 아니면 전장용으로 개발할지에 대한 검토 작업도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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