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大화재 1년] 밤새 잿더미가 된 지상낙원…아물지 않는 상처

지난해 8월 산불로 타버린 하와이 마우이섬 라하이나 지역 [로이터]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모든 것이 사라졌죠.”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하와이 마우이섬의 아름다운 해안마을 라하이나에서 3대째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수 브리메이어(77)는 지난해 8월 8일(현지시간) 혈육인 딸, 손자를 제외하고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최근 미 일간 USA투데이 인터뷰에서 라하이나 마을에 거대한 불길이 덮쳐 모든 것을 집어삼킨 1년 전의 그날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는 연기 냄새만 맡아도 그날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그날 아침 마을 반대편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봤지만, 이후 화재가 진압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길은 어느새 집 앞까지 들이닥쳤고, 그때부터 그는 집 안에 함께 있던 열 살짜리 손자를 데리고 필사의 탈출을 시작했다.

그는 “경고나 사이렌 소리 같은 것도 없었다”며 “부엌 창문 밖으로 불씨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밖에 나가 보니 건너편 집에 이미 불이 붙어 있었다”고 회상했다.

밤새 불길을 피해 마을 안의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다 해안가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 ‘라하이나 홍완지 미션’ 부지의 잔디밭에서 안전한 장소를 찾아 겨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브리메이어는 “정신을 차리고 길 건너의 마을을 보니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며 “이웃집 대부분이 불에 탔고 옆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바닥에 시체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렇게 지옥 같은 밤을 보낸 뒤 날이 밝았을 때 트럭을 타고 현장을 살피는 카운티 당국의 직원을 발견하고 그는 손을 흔들었으며, 놀란 직원이 그와 손자를 차에 태워 현장에서 빼냈다.

다행히 그는 대피소에서 같은 동네에 살던 딸과 재회할 수 있었다.

브리메이어는 “딸도 울고 나도 울었다”며 “딸은 우리가 죽은 줄 알았다고 했다”고 돌아봤다.

브리메이어의 딸 카우아이는 선조 때부터 가족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면서 “그 아름다웠던 집이 5인치(13㎝) 두께의 잿더미가 됐다. 모든 것이 사라진 이 상황을 당해보지 않으면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카우아이의 할머니가 소장하고 있던 옛 하와이의 기록을 담은 희귀한 책들이 모두 타버렸고, 그가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훌라춤 도구들도 사라졌다.

브리메이어는 집터의 잿더미를 뒤지다 과거에 사별한 남편이 선물로 준 하와이안 팔찌를 찾을 수 있었다면서 이 팔찌가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다고 말했다.

라하이나의 다른 생존자 키하 카이나는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한 뒤부터 정신적인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카이나는 CBS 방송 인터뷰에서 “내 안에는 이제 적대감과 부정적인 에너지만 존재한다”며 “자살을 생각할 만큼 무서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생존자 리넷 천도 “화재는 나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말했다.

하와이주 보건부의 공중보건 프로그램 매니저인 존 올리버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엄청난 슬픔”이라며 “(화재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 불안과 우울감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올리버는 라하이나에 살던 주민 약 1만2천명 가운데 화재 이후 정신 건강 문제로 지원을 요청한 사람이 곧 30%가량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 하와이 역사상 최악의 재난…사망자 102명 집계

지난해 8월 8일 마우이섬 서부 라하이나 등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총 102명의 사망자를 내고 3천에이커(12.1㎢)가 넘는 면적을 태웠으며 2천200여채의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불은 하와이 역사상 최악의 재해이자, 미국 전체로 봐도 1918년 미네소타주 북부 칼턴 카운티를 덮친 산불로 453명이 숨진 이래 105년 만에 가장 치명적인 화재로 기록됐다.

사망자 중에는 시신의 유골까지 완전히 타버린 경우가 많아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등 집계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는데, 지난 2월까지 101명으로 집계됐다가 지난 6월 부상자 1명이 숨지면서 1명이 추가됐다.

마지막 사망자는 68세 여성으로, 화재 당시 몸의 20%가량이 화상을 입었고 다른 여러 질환과 결합해 화상 병동에서 치료에 어려움을 겪다 결국 4개월 만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는 심혈관 질환과 말기 신장 질환, 욕창 등으로 고통받다 결국 화재 이후 10개월여 만에 숨졌다.

마우이 경찰이 공개한 희생자 명단에 따르면 이들의 연령은 7세부터 97세까지 다양했지만, 3분의 2 이상이 화재 직후 재빨리 대피하지 못한 6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화재 발생 당일 오전 6시 37분께 라하이나 인근에서 처음 신고된 산불은 3시간여 만에 100% 진압된 것으로 마우이 소방국이 선언했으나, 강풍을 타고 당일 오후 잔불이 살아나면서 야간에 무섭게 번져 순식간에 라하이나 마을까지 불길이 뻗쳤다.

당일 하와이 인근에 자리한 허리케인 ‘도라’ 영향으로 섬에는 강풍이 몰아쳤고 화염은 삽시간에 거대하게 치솟아 마을을 덮쳤다.

마을에서 빠져나가는 도로가 쓰러진 나무와 전선 등에 가로막히면서 대피로를 찾지 못한 주민 수십명이 황급히 불길을 피하기 위해 가까운 바다에 뛰어들기도 했다.

◇ 화재 영향 지속…”지원 이어져야”

화재 피해 주민들의 정신적·신체적·경제적 고통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여러 조사 결과 나타났다.

하와이주 농촌건강협회가 마우이섬에서 화재 영향을 받은 주민 1천1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6월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4%가 화재 전과 비교해 “정신 건강이 더 나빠졌다”고 답했고, 52%는 “육체 건강이 더 나빠졌다”고 했다.

또 응답자의 71%가 재정적인 이유로 음식과 식료품 소비를 줄였다고 답했으며, 59%가 화재 이후 3번 이상 이사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하와이대학교가 라하이나의 화재 피해 주민 6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5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74%가 화재 이후 호흡 곤란을 겪거나 호흡기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들이 화재 연기와 먼지에 장기간 노출된 영향으로 분석했다.

하와이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브라이언 샤츠(민주)는 지난달 30일 마우이 화재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상원에서 한 연설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피해 주민들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샤츠 의원은 “라하이나 주민들에게 지난 1년은 불확실성과 불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비탄의 시간이었다”며 “그 어떤 것도 12개월 전 그 끔찍한 날에 그들이 잃은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필요한 기간만큼 곁에 있는 것”이라며 “연방과 주, 카운티 등 모든 단위의 정부가 이재민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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