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그룹’에서 ‘K’를 빼자 시들해졌다…미국 현지화 아이돌, 왜 못 뜨나

걸그룹 비춰(VCHA)
JYP가 미국에서 제작한 현지 걸그룹 비춰(VCHA).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이브 미국 걸그룹 ‘캣츠아이’, 반응 미지근

하이브가 미국에서 제작한 현지 걸그룹 캣츠아이. [하이브 제공]

캣츠아이(Katseye)는 하이브의 미국 현지화 1호 걸그룹이다.

‘현지화 그룹’이란 △멤버가 대부분 해당 국가 출신이고 △해당 국가에서 데뷔·활동하는데 △K팝 시스템으로 제작한 그룹을 가리킨다.

하이브는 미국 유명 음반사 게펜 레코즈와 함께 대대적으로 오디션을 열어 멤버 6명을 뽑고,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등과 작업한 작곡가 겸 프로듀서 라이언 테더를 기용하는 등 공을 들였다.

그러나 캣츠아이의 두 번째 싱글 앨범 ‘Touch’의 뮤직비디오는 지난 26일 공개 후 사흘간 유튜브에서 약 130만 조회수를 내는 데 그쳤다.

지난 3월 하이브가 내놓은 국내 걸그룹 아일릿의 데뷔 곡 ‘마그네틱’ 뮤직비디오가 하루 만에 조회수 1,000만 회를 돌파한 것과 대조적이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미국 현지화 걸그룹 비춰(VCHA)도 사정이 좋진 않다. 지난해 오디션 프로그램 방송 후 4곡을 먼저 공개하며 예열 기간을 거친 뒤 올해 1월 ‘Girls of the Year’로 정식 데뷔했으나 미국과 한국의 주요 음악차트에 들지 못했다.

최연소 멤버인 케일리가 지난 3월 건강상 이유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그룹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들은 다음 달 시카고에서 열리는 대형 음악축제 ‘롤라팔루자’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19일 돌연 취소 소식을 전했다.

미국 팬들 사이에선 “JYP가 비춰를 버린 게 아니냐”는 목소리마저 나왔다.

제작은 K팝 시스템인데 포장은 미국 그룹…왜?

K팝 기획사들이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음악시장 미국 공략에 나섰으나, 높은 벽에 부딪혔다.

활동 기간을 감안하면 캣츠아이와 비춰의 성과를 언급하기엔 이르긴 하지만, 한국에서 데뷔한 K팝 그룹들이 미국 음악 차트에 곧바로 오르는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일본 현지화 그룹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팬덤을 확보한 뒤 데뷔 직후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것과도 대비된다.

일본과 중국에서 K팝 현지화에 성공을 거둔 K팝 기획사들은 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서도 비슷한 공식으로 초기 마케팅에 나섰다.

①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모으고 ②팬덤을 키운 뒤 ③K팝 시스텝으로 트레이닝을 시켜 데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캣츠아이와 비춰는 오디션 프로그램 방송 이후 오히려 관심에서 멀어졌다.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선 두 그룹을 두고 “K팝 시스템으로 훈련시키고도 평범한 서양 걸그룹처럼 포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너무 안전한 곡들을 발표해 새롭지 않다”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하는 지점이 뭔지 흐릿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K팝 최대 강점이 ‘K’인데…K 빼도 성공할 수 있나

전문가들은 K팝의 최대 강점이 외모, 패션, 안무, 음악 등의 총합인 ‘K’라는 정체성에 있는 만큼 ‘K’가 빠진 그룹이 현지 팬을 공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K팝이 미국 팝과 차별화할 수 있는 건 ‘K’라는 정체성인데 K를 빼버린다면 다른 미국 팝과 다를 게 없다”면서 “미국 그룹 대신 한국 기획사가 제작한 그룹의 노래를 찾아 듣게 하려면 어떤 차별성과 매력을 드러내야 할지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의 정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K팝 시스템으로 제작한 일본 그룹들이 일본 이외의 나라에선 맥을 못 추는 현실이 방증한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는 “일본이나 중국은 K팝이 주류 문화의 일부이고 외모나 문화가 한국과 비슷해 현지화가 용이했다”며 “K팝이 아직 서브컬처인 미국이나 유럽에선 성공 공식이 얼마나 통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K팝 기획사들의 현지화 실험은 계속된다. SM엔터테인먼트는 올 하반기 영국에서 현지화 보이그룹을 데뷔시킬 예정이고, JYP는 남미에서도 걸그룹을 선보인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비춰나 캣츠아이는 미국의 다른 그룹들에 비해 색깔이나 차별적 요소가 선명하지 않다”면서 “미국, 유럽, 남미는 시장이 크고 소비층이 다양한 만큼 차별화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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