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텐이 티몬·위메프 사태의 발단이 된 미국 e커머스 위시를 인수한 배경으로 위시의 현금성 자산을 노린 정황이 포착됐다. 위시 인수 대금 2400억 원 가운데 실제로는 티몬·위메프에서 끌어온 400억 원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큐텐이 위시의 현금성 자산 및 부채를 인수하는 것으로 상계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구영배 큐텐 대표가 동원할 수 있다고 밝힌 800억 원도 위시의 현금성 자산 일부로 관측되는데 향후 검찰 및 금융 당국의 자금 추적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큐텐에 위시를 매각한 미국 나스닥 상장사 콘텍스트로직은 “큐텐 측에 회사 자산 일체를 매각하되 유가증권과 일부(certain)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제외한다”고 밝혔다. 콘텍스트로직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보유한 유가증권과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총 3억 500만 달러로 공시하면서 위시 매각 완료일(4월 19일) 이후 해당 자산이 1억 6100만 달러로 줄었다고 밝혔다. 차액인 1억 4400만 달러(약 2000억 원) 규모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큐텐이 인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큐텐은 위시의 외상매출채권 등 유동부채 1억 6400만 달러(약 2200억 원)도 양도받았다.
큐텐은 위시 인수에 1억 7300만 달러(약 2400억 원)를 사용했다고 밝혔는데 인수 후 확보한 현금성 자산 및 부채 등을 고려했을 때 실제 투입한 자금은 2900만 달러(약 400억 원)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구 대표가 위시 인수를 위해 티몬·위메프에서 끌어다 썼다고 말한 400억 원과 일치한다. 검찰은 해당 금액을 근거로 구 대표에게 횡령·배임 등의 혐의를 적용한 상태다.
이날 서울회생법원 회생2부는 류광진 티몬 대표이사와 류화현 위메프 대표이사가 출석한 가운데 두 회사가 신청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대한 첫 심문을 진행하고 회생절차 개시 전 채권단과 자율 협상에 나서는 자율 구조조정(ARS)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큐텐이 콘텍스트로직으로부터 위시를 인수하면서 양도받은 2000억 원의 현금성 자산은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진행 중인 자금 추적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 대표는 지난달 30일 국회에 출석해 “큐텐그룹이 동원 가능한 자금은 최대 800억 원”이라고 말했는데 대부분의 계열사가 적자로 재정난에 빠진 큐텐그룹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 돈은 위시가 보유한 2000억 원 중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 큐텐 측은 해당 800억 원이 중국에 묶여 있어 국내로 들여올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위시가 약 200개국에서 사업 중인 것으로 알려진 만큼 중국 등 각국의 현지 법인에 현금성 자산이 흩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큐텐이 처음부터 위시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을 노리고 이를 판매 대금 돌려막기 등에 활용하기 위해 위시 인수를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위시를 인수하면서 외상매출채권 등 2200억 원의 유동부채도 함께 넘겨받았지만 당장 가져다 쓸 수 있는 현금성 자산에 더 주목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위시 인수 이후 해당 현금성 자산을 국내로 반입하는 데 문제가 생기면서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 대금 돌려막기가 틀어졌고 결국 미정산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돈이 없는 기업이 무자본 내지 소자본 인수합병(M&A)으로 피인수 기업의 내부 자금을 사용하는 방식은 흔하다”면서도 “큐텐의 경우 위시로부터 받아온 자금이 어디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아 의문스럽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경제신문은 구 대표가 직접 밝힌 중국에 있는 자금 800억 원의 성격에 대해 문의했지만 구 대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큐텐의 위시 인수 거래 출발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큐텐은 미국 법인 ‘큐텐델라웨어(Qoo10 Delaware)’를 활용해 위시를 인수했다. 델라웨어는 미국 현지에서 조세회피처로 분류되는 지역으로 법인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리해 상당수 해외 기업들이 미국 법인을 이곳에 둔다. 큐텐은 해당 거래 후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에 ‘큐텐위시(Qoo10 WISH PTE. LTD.)’라는 유한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는데 이곳으로 위시의 현금성 자산 일부가 흘러갔을 수도 있다.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