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병, 10대 중·후반기 시작해 평생 지속
‘밤에 잠을 충분히 잤는데 낮에 수업·회의·운전하거나 버스를 탄 뒤 앉기만 해도 갑자기 잠든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 잠들기도 한다(졸림 발작).’ ‘잠들거나 깰 때 생생한 환각을 보거나, 가위에 자주 눌린다.’ ‘수면장애 탓에 잠에 제대로 들지 못한다.’
이처럼 낮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졸리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면 기면병(narcolepsy)일 수 있다. 기면증은 낮 시간에 너무 졸리고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의 비정상적인 발현, 즉 잠들 때(hypnagogic)나 깰 때(각성) 환각, 수면 마비, 수면 발작 등의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다.
기면병 환자는 낮에 너무 졸기에 학교·직장 등에서 ‘게으름뱅이’ ‘성실하지 못하다’는 등의 오해를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병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5,000명 정도만 치료를 받고 있다.
증상으로는 웃거나 기분이 흐뭇해지는 등 감정 변화가 생겼을 때도 턱·어깨·목·무릎 관절 주위 근육에 힘이 빠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 같은 ‘탈력 발작(cataplexy)’은 환자의 70~80%에게서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말을 못 하거나 주저앉거나 쓰러지기도 한다.
정기영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기면병 환자는 탈력 발작 증상 등으로 인해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4배 정도 높다”며 “치료하지 않으면 각종 안전 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아 조기 진단과 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다”고 했다.
기면병은 10대 중·후반기에 시작해 평생 지속되고, 공부·업무·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 수 있다. 정기영 교수는 “기면병을 제때 진단받지 못해 10년 이상 남몰래 고통을 받는 환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정기영 교수는 “기면병 환자는 점심 후에 20~3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게 좋다”며 “낮잠을 자면 기면병 0.5알의 약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했다.
기면병은 뇌 시상하부에서 각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히포크레틴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 신경세포 사멸로 발생하는 만성 뇌 질환이다. 히포크레틴은 뇌 각성 중추를 자극해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렘수면을 억제해 잠잘 때 렘수면이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도록 조절한다.
그런데 이런 히포크레틴이 없으면 낮에 각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갑자기 각성 스위치가 수면 상태로 바뀌면서 졸리고, 특히 렘수면 상태로 잠이 오면서 꿈을 꾸는 듯한 환각을 경험한다. 또한 웃을 때 근육에 힘이 빠지는 탈력 발작 증상도 렘수면이 각성할 때 돌출해 발생하기 마련이다.
기면병은 수면 다원 검사와 다중 수면 잠복기 검사 등으로 진단할 수 있지만 수면 부족, 다른 수면장애 등으로 인한 졸림증이 아닌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보통 수면장애는 밤에 수면 다원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기면병을 진단하려면 야간 수면 다원 검사에서 수면 시간이 충분하고 다른 수면장애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미주 한국일보 권대익 의학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