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에 시큰둥하던 흑인·아시아계, 해리스 등판에 기대감

“미국 내 아시아계 전체 흥분”…흑인 사회서도 지지선언 잇따라

“같은 유색인종이라고 무조건 표 줄 거라 속단 말라” 경고도

흑인이자 인도계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급부상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소수인종 유권자들의 태도가 변화할 조짐이 보인다.

미국 애머스트 대학의 미국학 교수인 파완 딩그라는 23일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와 한 인터뷰에서 인도계는 물론 미국 내 아시아계 전체가 해리스 부통령의 대선 출마에 흥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1990년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는 민주당 지지자 수레시 칼리아나라만(55)는 NBC 방송 인터뷰에서 “2008년 버락 오바마가 승리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댈러스에 거주하는 인도계 주민 스와티 조쉬(60)도 해리스의 대선 출마는 “그저 여성만이 아닌 남아시아계 전체에 있어 큰 한 걸음”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아시아계 인구는 지난 20년 사이 갑절 이상으로 증가했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아시아계 미국인 유권자의 약 62%는 민주당을 지지한다. 전체 숫자는 미국 인구의 7% 남짓이지만 경합주에서는 선거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집단으로 올라섰다고 선거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아시아계뿐 아니라 오바마에 이어 두 번째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가능성을 본 아프리카계 공동체의 반응도 뜨겁다.

흑인 여성 단체인 ‘흑인 여성과 함께 이기다'(Win With Black Women) 지도부 4만4천여명은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세 시간 만에 150만 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딸 버니스 킹도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는 이전까지 정치와 관련해 특정인을 지지한 적이 없었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다가 이번에는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였다는 밀워키의 퇴역군인 출신 흑인 이발사 네이선 게인스(43)도 뉴욕타임스(NYT)에 해리스가 등판한다면 판단을 재고하겠다며 “그에게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반응은 지난 21일 민주당 대선 후보에서 사퇴한다고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에게 흑인과 아시아계가 보여온 뜨뜻미지근했던 태도와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다.

지난 10일 미국 내 아시아·태평양계(AAPI) 유권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46%로 2020년 대선 당시보다 8%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WP)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진행한 여론조사에선 흑인 유권자의 62%가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답했는데, 이 역시 2020년 대선 직전 여론조사 때보다 12%포인트 낮은 비율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민과 경제 등과 관련한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일부가 이탈한 데 따른 것으로 진단된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의 한 흑인교회에 마련된 무대에 현지 출신 흑인 래퍼와 함께 깜짝 등장해 지지를 호소하는 등 흑인 유권자 표심 공략에 공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흑인이자 인도계인 해리스의 등판은 그간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여온 소수인종 유권자들의 표가 민주당으로 급격히 쏠릴 가능성을 만들어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다만, 같은 소수인종이라는 사실만으로 유권자들이 기꺼이 표를 줄 것이라고 속단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딩그라 교수는 “그(해리스)는 모든 미국인이 관심을 갖는 문제를 말하되 아시아계와 연결이 되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아시아계에 중요한 특정 외교정책에 대한 입장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3년 반 동안 부통령으로 재직하면서도 존재감이 희미했던 것도 아시아계와 흑인 유권자의 확신을 얻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알렉시스 리(26)는 NBC 방송 인터뷰에서 “내 친구 중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건 ‘그(해리스)가 지난 2년간 부통령으로 있으면서 어떤 일을 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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