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재임 뒤 재선 실패…대선 패배 불복·와신상담 속 정치적 재기 성공
2번 탄핵·4차례 형사기소·유죄 평결 ‘불명예’…총격사건서 ‘기적적 생존’
‘정치 이단아, 쇼맨십, 거래 지향적, 사고뭉치, 일방통행, 예측 불가능’
이런 말들은 18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함으로써 4년 만에 공식적으로 다시 대통령직 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자주 뒤따르는 수식어들이다.
세계를 좌우할 힘을 가진 미국 대통령은 모두가 늘 주목하는 자리이지만, 재임 기간에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전세계의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된 인물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 재벌이자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견습생) 진행자로 유명해진 그는 2016년 대선에서 ‘가장 잘 준비된 후보’로 불린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을 이겨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에서 공직이나 군 경력이 없는 대통령이 처음으로 탄생한 순간이었다.
미국이 신봉해온 세계화의 혜택을 보기는커녕 일자리를 잃고 밀려난 백인 저소득층의 주류 정치에 대한 불만이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 제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주장하며 통념은 물론이고 공화당의 전통적인 기조와도 어긋나는 ‘마이웨이’로 4년간 미국과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에게 동맹이란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거래’의 대상이었다. 그는 집권 1기 때 한국에 주한미군 철수 카드로 방위비 대폭 인상을 강하게 압박해 미국 입장에서 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는 무역적자를 줄이려고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였고, 한국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협박하며 협정 재협상을 관철했다.
그는 북한을 상대로 ‘핵 버튼’을 운운하며 전쟁을 벌일 것 같이 으름장으로 맞섰다가도 북한 최고 지도자와 세 번에 걸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했다.
또 회담 결렬 이후에도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관계를 쌓으며 한때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기대를 키우기도 했다.
독주와 예측 불가능으로 점철된 그의 집권 시기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불법 이민을 막고자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건설했고, 이슬람 국가 국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기도 했다.
임기 마지막 해에 코로나19가 확산하자 살균제 주입을 제안해 논란이 됐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며 전임 대통령이 가입한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으며, 서방 국가들이 이란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체결한 핵 합의도 이란의 위협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걷어찼다.
기성 언론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그는 행정부 당국자들조차 몰랐던 중대한 정책 결정을 한밤에 트위터에 수시로 올려 전 세계를 불안하게 하기도 했다.
특유의 막말과 편 가르기로 미국 정치의 극단화를 부추겼다는 지적도 받는다.
반면 사업가다운 기질로 미국의 변화하는 시류를 읽을 줄 알며, 예측 불가능한 이미지조차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이용하는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미국의 이익을 챙기는 노련함을 지녔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처럼 혼란과 갈등으로 점철된 4년에 지친 미국 유권자들은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선택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사기’를 주장하며 승복하지 않았다. 그는 후임인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권력을 이용해 대선 결과를 바꾸려 했고, 2021년 1월 6일에는 워싱턴DC에 집결한 지지자들을 선동해 이들이 의회에 난입하도록 자극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대선 뒤집기 시도와, 군사적 지원을 매개로 우크라이나에 바이든 대통령 차남에 대한 수사를 압박한 혐의로 의회에서 두 차례 탄핵 재판을 받는 오명을 남겼다.
상원에서 두 차례 모두 탄핵재판이 기각되기는 했지만, 미국 역사에서 재임 중 두 차례 탄핵안이 가결된 대통령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대통령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다른 전직 대통령과 달리 정치에 적극 관여하며 재기를 도모했다.
그는 공화당 당원 중 상당수가 여전히 자신을 지지하는 점을 활용해 공화당 정치인들을 줄 세우며 당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해갔다.
공화당 의원들에게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등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라고 지시했고, 마음에 안 드는 공화당 후보를 2022년 중간선거 경선에서 떨어뜨리려고 하는 등 ‘상왕’ 행세를 하며 공화당을 ‘트럼프당’으로 변모시켰다.
대선을 도둑맞았다고 주장하며 백악관 재입성을 위해 와신상담했던 그는 2022년 11월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올해 1월 시작된 공화당 경선에서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등 경쟁자를 초반부터 압도했고, 3월에 대선 후보 선출에 필요한 과반 대의원을 확보하며 조기에 경선을 종결지었다.
정치적 재기 과정에 도전과 시련도 잇따랐다.
그는 대선 뒤집기 시도, 국방 기밀 불법 유출,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등의 혐의로 4번이나 형사 기소됐다.
미국 역사상 전직 대통령이 형사기소된 첫 케이스였다.
더욱이 그는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혐의 관련 1심 재판에서는 유죄 평결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사법 리스크’를 ‘마녀사냥’으로 규정하며 오히려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 활용, 백악관 탈환을 향한 대선 가도를 공공히 해나갔다.
자신을 공화당 대선 후보로 공식 선출하는 공화당 전당대회를 사흘 앞둔 지난 13일에는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중 총격에 의한 암살 시도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총알이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하는 부상에 그치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특히 그는 추가 총격에 의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는 순간에도 주먹을 치켜세우며 지지층에게 “싸우라”고 촉구하는 강인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제 그는 11월 5일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946년 독일계 이민자 2세의 차남으로 태어난 금수저였다.
1971년 부친으로부터 부동산업체의 경영권을 물려받아 지금의 ‘트럼프그룹’으로 일군 부동산 재벌로,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5월 그의 순자산가치를 75억달러(약 10조3천700억원)로 추산했다.